1. 민주주의 체제가 가동되려면, “민주주의의 기본적 인간관 - 자유롭고 평등하며, 적극적인 도덕적 행위자이자, 자기 결정과 정치적 선택 능력을 갖춘 존재 - 이” 충족되어야 한다. 개인의 도야와 사회의 공의를 공진화시키는 ‘실천적 지혜’(Phronēsis)는 무엇인가.
2. 보수적 항존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이 격돌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계몽적] 민주주의의 과제는 “숙고를 거친, 일관된, 상황에 얽매이지 않은, 사회적으로 입증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 그런 선호가 형성되도록 장려하는 절차의 도입”이다. 혹자는 대안으로 숙의(熟議)를 거론한다.
3. Joseph M. Bessette(1980)에 의해 고안된 숙의 민주주의 - David Held(2006)의 분류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9번째 모델 - 의 요지는 “고정된 선호라는 개념에 작별을 고하고, 그런 고정된 선호를 어떤 학습 과정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 추상적이고 이미 생각해 놓은 합리성 기준을 단지 강요할 것이 아니라, ‘교사’와 ‘교사과정’의 역할이 제고되고 학습 과제가 학습 과정 그 자체 속에서 정해지는, 미리 정해진 답이 없는 지속적이고 열린 학습 과정으로서의 정치에 헌신하는 것이다.”
4. [공적] 숙의는 “이해관계의 언어를 이성의 언어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숙의 과정을 통해 “일정하게 형성된 선호들이 어떻게 분파적 이해관계와 연계되어 있고 그리하여 이데올로기적 목표를 갖고 있는가를 드러내 보여 줄 수 있다.” 다시 말해, “타협적 선호 - 즉, 고정되고 불변일 것 같은 상황에 스스로를 적응시키기 위해 자신의 기대치를 낮춤으로써 형성된 선호 - 의 한계를 드러내 보여 준다. Joshua Cohen(1989)은 이를 ‘종속 상황에 대한 심리적 적응’이라고 불렀다. 지배적 정치 질서를 수용하는 여러 유형 중에서 ‘전통’이나 ‘실용적 묵인’에 기초하는 것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5. “사적인 선호를 공적인 조사나 검증에 견딜 수 있는 입장으로 전환시키는” 숙의는 “민주적 논증의 질과 정치적 행위의 정당화에 관심을 둔다. 숙의 이론가들이 초점을 둔 것은 시민의 자질 계발, ‘정제되고’ ‘사려 깊은’ 정치적 선호의 장려, 정치적 합리성 - 타인에 대해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증명한다는 개념과 밀접히 연관된 - 등이었다.”
6. 요컨대 사실, 미래, 타인에 대한 ‘사려 깊은 선호’로 정리되는 숙의 민주주의는 부단한 대화를 통한 시민의 학습과 [정당화된] 공공선 지향을 추구한다. 도야와 공의의 청사진은 무엇인가? 숙의 민주주의에는 이것(The Vision of Politics)이 누락되어 있다. 숙의 민주주의는 달성해야 할 미래의 상태가 아닌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영속적인 운동으로서 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한다.
7. 그렇다면 숙의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원주의 갈등의 완숙한 해소이다. 곧 ‘민주적 자치’다. 따라서 James Bohman(1998)에 따르면 “광의의 의미에서 숙의 민주주의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공적 숙의가 정당한 정치적 의사 결정이나 자치의 핵심 요소라고 생각하는 일군의 견해’로 정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