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르토(1896~1948)는 연극을 이렇게 정의했다. “연극이란, 마귀를 불러 내서 다시 그 마귀를 쫓아 내는 의식이다.” “1931년, 파리 박람회에서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무용극을 본 아르토는 ‘위대한 마력의 힘’을 느낀다.” “아르토는 연극과 연금술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우주의 여러 가지 물질을 강한 불로 녹여 깨끗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물질, 즉 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아르토는 연극이 정신의 불순물을 마력이라는 강한 불로 녹여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_ 명로진(2000). <연극이 희희낙락>. 주니어김영사. 114~116쪽.
2-1. “우노 구니이치(宇野邦一)는 들뢰즈의 지도 하에 앙토냉 아르토에 관한 논문을 쓰고, 일본으로 귀국해서 [<푸코>, <주름>, <안티오이디푸스>,] <천의 고원>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그 후 들뢰즈에 관련된 글들을 포함해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글을 발표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학자이다.”
2-2. “<안티 오이디푸스>의 발상은 앙토냉 아르토라는 이름에 깊이 결부되어 있다.” “아르토는 초현실주의에 관계된 일도 있는 시인, 연출가, 배우였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약 9년에 걸쳐서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입원 중에도 또 퇴원하여 파리로 되돌아와서부터 암으로 죽기까지의 2년 동안에도 끊임없이 집필을 계속했고, 독창적인 데생도 그렸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눈부신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얼마 안 있어 아르토는 현대연극 실험연극의 창시자로 간주되고, <연극과 그 분신>(Le Théâtre et son double, 1938)이라고 하는 책이 널리 읽혀지게 된다. … 그것 이상으로 그의 청년기부터의 에크리튀르(시, 시나리오, 편지, 에세이, 소설, 수기)가 사고를 둘러싸고 또 신체와 언어를 둘러싸고 어떤 이상한 과정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 주목받게 되었다.”
2-3. 아르토는 확실히 현대적 창조의 또 하나의 극으로서 분열증적인 극, 비오이디푸스적인 극을 심층의 어둠 속에 떠오르게 한다. 그 어둠 속에 하나의 이상한 신체를, ‘기관 없는 신체’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가타리도 들뢰즈도 저마다 독자적으로 더듬어 간 궤적의 연상상에서 ‘기관 없는 신체’라는 주제를 제출하고, 근본적으로 다양한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아르토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에 병원에 감금된다. 이제 신체는 정의 가능한 기능과 가시적인 형태에 의해서 기관의 집합으로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유동적이고 강도의 소용돌이와 단편으로 가득한 신체일 수밖에 없었다. 사고도 언어도 그러한 신체의 직접적인 표현인 듯했다. ‘기관 없는 신체’는 하나의 분열증적 과정 그 자체이고, 그 근거이며, 그 결과(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과정과 신체는 결코 그저 아르토라는 한 인물의 이상한 체험과 병리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병원에 갇혀 있었던 것이 세계전쟁과 파시즘의 시대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분열증적인 과정과 ‘기관 없는 신체’는 서구의 역사와 사회의 심층에 있어서 위기와 변동의 징후이고, 그 표현이며, 그 폭발이었다.”(이정우ㆍ김동선, 2008)
3. 참고: 홍성민(1999). 퍼포먼스, 삶과 연극의 이중(Double): 잔혹극의 앙토냉 아르토를 통한 20세기 퍼포먼스 읽기. 월간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