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1st, 2010

July 1, 2010: 11:11 pm: bluemosesErudition

대표할 수 없는 자들의 대표 - “그들은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고 대표되어야 한다” - 는 상충된 이해를 통합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을 이뤄내는가. 내부의 모순을 외부로 투사함으로써. 예컨대 전쟁을 동원하여. “보나파르트는 모든 계급에 대해 가부장적인 은인으로서 나타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계급에게서 빼앗아오지 않고는 어느 계급에게도 베풀 수 없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의 모순된 요구에 의해 궁지로 내몰림과 동시에, 마술사처럼 끊임없이 놀라운 일을 연출하여 공중의 눈을 나폴레옹의 대역인 자신에게 향하도록 하기 위해, 매일처럼 소규모 쿠데타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보나파르트는 시민적 경제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1848년 혁명에서도 불가침이라고 생각되던 모든 것을 침해하여…”

: 10:29 pm: bluemosesErudition

六十甲子: 10干과 12支의 최소공배수

: 10:28 pm: bluemosesErudition

Musical RENT(by Jonathan Larson)

: 10:13 pm: bluemosesErudition

성경 기자는 ‘축자(逐字) 영감’에 견인되었다.

: 10:12 pm: bluemosesErudition

0. Why beauty is truth? Less Aesthetics More Ethics!

1. “인간의 욕망이나 의지 등에 의해서 지배되는 윤리적 가치 이외에 다른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욕망이나 의지에 기초를 두지 않은 새로운 가치이어야 한다. 그것은 예술적 가치이다. 예술적 가치는 인간을 도덕적 행위의 성실성, 엄격성, 책임 등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러므로 “삶은 성실하고, 예술은 즐겁다”고 한다. 쉴러는 예술을 ‘도덕계의 귀족’이라 불렀고, 빈델반트는 ‘진실로 가치 그 자체의 나라’, ‘무욕구의 왕국’이라고 찬양했으며, 하이데거는 ‘시는 모든 영위 가운데 가장 무책임한 것’이라고 한다.”

2.

: 10:12 pm: bluemosesErudition

1. “사진의 발명으로 인상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는 말은 이 시대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도식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이 모든 것을 무감각한 피사체로 담아내듯이 인상주의 예술가들도 외부 세계를 그렇게 드러낸다. 그러나 인상주의는 사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인상주의의 세계 속에서 모든 것은 한 순간도 정지해있는 법이 없으며, 원근법적 세계가 무너지고 중심에서 이탈하여 모든 것들이 중심이 되며 기존 가치의 체계가 사라진다. 평면 속에서 깊이를 드러내고자 할 때 사용되던 단축법이나 명암법과 같은 환영주의는 인상주의에 와서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도리어 모든 것이 색채로만 뒤덮인 평면이 되어 버린다.”

2. “인상주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를 정지해 있는 평면으로 옮기고자 하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 모험의 결과, 구석기 시대 이후 최초의 반지성주의 예술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모네에게 눈이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것은 우리의 망막에 비친 영상을 옮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지성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하게 감각만으로 인식된 세계를 캔버스에 옮기려고 노력하였으며, 그의 양식은 빛을 머금은 색채로만 구성된, 이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양식이 되었다.” 

3. 근대의 “한편에서는 거대한 합리성의 성이 구축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은 자아를 상실한다. 보들레르가 ‘현대성은 지나가는 것, 일시적인 것, 우연적인 것으로서 이것이 예술의 절반이며, 또 다른 예술의 절반은 바로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라 했을 때, 이는 19세기의 현실과 그에 상응하는 인상주의 예술의 성격을 집약하고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정지해 있는 것이 없다고 했을 때, 외부 세계의 모든 것들이 동등하게 평면화되었을 때, 인간 중심의 세계가 무너져 ‘반인간주의’가 되고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태도가 그 힘을 잃고 ‘반이성주의’가 시작하게 된다. 그러니까 20세기를 풍미하게 되는 반원근법적 사유들은 인상주의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셈이다.”

4. “세잔은 자신만의 원근법을 만들어 낸다. 즉 모든 것이 변하고 탈가치화될 때 그것을 포착하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며 자신의 내면만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내면의 기하학주의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이 시대에 연작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게 된 것 역시 순간의 진리 포착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 미술이 급격하게 추상 미술이 되어간 까닭은 여기에 있다. 늘 변하는 어떤 세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현대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변하지 않는 어떤 규칙이 필요했고, 그 규칙을 외부의 세계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끄집어 올렸다. 그래서 현대의 고전적 양식은 이전의 고전적 양식과는 다른 의미의 고전적 양식이 된다. 그리고 세잔은 현대 고전적 양식의 선두이다.”

* “울퉁불퉁하던 세계가 돈 앞에 무너져 평탄하게 되어가던 세계에서,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 때문에 애국심이 파탄나는 세계에서, ‘파리코뮌’이라 불리는 계급투쟁의 시가지 전투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유례없는 혹평을 견디면서 자신들의 그림을 고수했다. 분명 그들은 19세기라는 시대의 혼란함과 교감하고 있었고, 당대의 ‘높으신 분’들은 시대를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가는 정치적 권위도 후원자도 더 나아가 관객도 믿어서는 안되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어야 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믿었던 자들은 후대의 평가를 얻어 불멸을 획득하게 되었다.”

: 10:04 pm: bluemosesErudition

Reading through Sigmund Freud(1856~1939), Listening to Gustav Mahler(1860~1911), Looking at Gustav Klimtt(1862~1918)

*William Johnston(1983[2008]). <The Austrian Mind: An Intellectual and Social History 1848~1938>

: 9:58 pm: bluemosesErudition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미술을, 각 미술마다 자유를” … “19세기말 중부 유럽에 등장한 분리파[즉, 공식적인 관학 미술에 반대하여 미술가들이 조직한 단체]의 결성은 국가가 지원하는 미술과 중부 유럽의 부르주아적인 실증주의를 재확인시켜 주는 미술에 위기가 다가왔음을 의미했다.” “분리파라는 명칭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머리가 둘인 독수리 문장 아래에 결집했던 많은 국가들의 열망을 상기시키는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 4:06 pm: bluemosesErudition

1. 아르토(1896~1948)는 연극을 이렇게 정의했다. “연극이란, 마귀를 불러 내서 다시 그 마귀를 쫓아 내는 의식이다.” “1931년, 파리 박람회에서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무용극을 본 아르토는 ‘위대한 마력의 힘’을 느낀다.” “아르토는 연극과 연금술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중세의 연금술사들은 우주의 여러 가지 물질을 강한 불로 녹여 깨끗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물질, 즉 금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아르토는 연극이 정신의 불순물을 마력이라는 강한 불로 녹여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_ 명로진(2000). <연극이 희희낙락>. 주니어김영사. 114~116쪽.

2-1. “우노 구니이치(宇野邦一)는 들뢰즈의 지도 하에 앙토냉 아르토에 관한 논문을 쓰고, 일본으로 귀국해서 [<푸코>, <주름>, <안티오이디푸스>,] <천의 고원>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그 후 들뢰즈에 관련된 글들을 포함해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글을 발표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학자이다.”

2-2. “<안티 오이디푸스>의 발상은 앙토냉 아르토라는 이름에 깊이 결부되어 있다.” “아르토는 초현실주의에 관계된 일도 있는 시인, 연출가, 배우였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약 9년에 걸쳐서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입원 중에도 또 퇴원하여 파리로 되돌아와서부터 암으로 죽기까지의 2년 동안에도 끊임없이 집필을 계속했고, 독창적인 데생도 그렸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눈부신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얼마 안 있어 아르토는 현대연극 실험연극의 창시자로 간주되고, <연극과 그 분신>(Le Théâtre et son double, 1938)이라고 하는 책이 널리 읽혀지게 된다. … 그것 이상으로 그의 청년기부터의 에크리튀르(시, 시나리오, 편지, 에세이, 소설, 수기)가 사고를 둘러싸고 또 신체와 언어를 둘러싸고 어떤 이상한 과정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 주목받게 되었다.”

2-3. 아르토는 확실히 현대적 창조의 또 하나의 극으로서 분열증적인 극, 비오이디푸스적인 극을 심층의 어둠 속에 떠오르게 한다. 그 어둠 속에 하나의 이상한 신체를, ‘기관 없는 신체’를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가타리도 들뢰즈도 저마다 독자적으로 더듬어 간 궤적의 연상상에서 ‘기관 없는 신체’라는 주제를 제출하고, 근본적으로 다양한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아르토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에 병원에 감금된다. 이제 신체는 정의 가능한 기능과 가시적인 형태에 의해서 기관의 집합으로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유동적이고 강도의 소용돌이와 단편으로 가득한 신체일 수밖에 없었다. 사고도 언어도 그러한 신체의 직접적인 표현인 듯했다. ‘기관 없는 신체’는 하나의 분열증적 과정 그 자체이고, 그 근거이며, 그 결과(산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과정과 신체는 결코 그저 아르토라는 한 인물의 이상한 체험과 병리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병원에 갇혀 있었던 것이 세계전쟁과 파시즘의 시대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분열증적인 과정과 ‘기관 없는 신체’는 서구의 역사와 사회의 심층에 있어서 위기와 변동의 징후이고, 그 표현이며, 그 폭발이었다.”(이정우ㆍ김동선, 2008)

3. 참고: 홍성민(1999). 퍼포먼스, 삶과 연극의 이중(Double): 잔혹극의 앙토냉 아르토를 통한 20세기 퍼포먼스 읽기. 월간미술.

: 3:07 pm: bluemosesErudition

Seven Steps to Inner and Outer Beauty

Step 1. Peaceful Living
Step 2. Pure Food
Step 3. Proper Exercise
Step 4. Plenty of Water
Step 5. Prayer and Fasting
Step 6. Fresh Air and Sunlight
Step 7. Perfect 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