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으로 빠지는 길이 대략 아홉 단계로 나뉘었기에 구단자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단자카는 이름 그대로 급경사였다.”
“잊으면 안 되네. 우리는 서양의 ‘합리와 자유’라는 간판 밑에 도사린 탐욕을 두려워하고 있네. 경계하면서도 그 문명의 총아를 배워 그들의 탐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를 원하지. 친절을 가장한 서구의 추상열일 정신, 그 굳음과 무름, 냉과 온을 모두 흡수하여 스스로 얼어붙은 불길 같은 인격을 갖추어 귀국하는 것. 우리 유학생의 사명은 바로 그것이네.”(노기 마레스케)
“유술과 유도의 차이는 발입니다. … 체격이 승부를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모두 역학을 응용한 것이지요.”
“메이지 시대 사람이 외국어를 잘한다는 건 속설에 불과하다. 당시 외국어 학교 러시아과에는 교과서가 없었다. 러시아어 서적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국적인 러시아어 교사는 러시아 소설을 낭독했다. 그렇게 하고선 학생들에게 그 등장인물의 인간성에 대해 물었다. 하세가와 후타바테이는 이런 교육을 통해 소설은 인간의 고뇌 그 자체를 비추고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적절한 질문을 담는 그릇이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본 근대 문학의 맹아였다. 이를 실천할 때, 즉 『뜬구름』을 쓸 때 후타바테이는 일단 일본어에 따라 뇌리에 있는 이미지를 만들고 이어서 러시아어로 서술하여 다시 그것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원고로 만들었다. 근대 지식인의 소외를 그리기엔 에도 화류계에서 쓰이는 매끄러운 문장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처럼 그는 새로운 글말을 개발한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의 환영과 혼미를 모두 깨버리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남는 것은 개인뿐이지 않을까요? 다들 그렇게 산다면 필연적으로 무정부주의가 될 것이라고 슈타이너가 말했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고민했습니다. 저는 그저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 또는 어릿광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연예감정을 안게 되었을 때 차라리 무정부주의적으로 살아갈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평온한 고국을 잊을 수도 없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욕망의 저울이 있었습니다. 저울 한쪽 접시에는 해방을 주장하는 현실의 자아를 싣고 다른 한쪽에 이상적인 고향을 실었을 때 자아가 실린 접시에 손가락을 얹는 희고 보드라운 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칭은 이상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귀국을 결심했던 순간 이미 내 연애는 파탄이 났던 것입니다.” “저는 꿈속에서 살며, 연기하는 역할과 타협하고 생애를 다하려고 합니다. 꿈에서 주어진 역할을 마치 현실처럼 연기하며 밤에만 혼자 고민하는 사나이로 돌아와 현실을 마치 꿈처럼 여기에 살아갈 겁니다.”(모리 린타로 혹은 모리 오가이)
모리타 소헤이는 “메이지 41년 3월에 라이초 히라쓰카 하루코와 시오바라 온천에서 동반자살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후 잠시 소세키의 집에 숨어 살며 메이지 42년 설부터 도쿄 아사히신문에 그 전말을 증언하는 『매연』이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 때 하루코의 유서는 이렇다. “난 결코 사랑을 위해 사람을 위해 죽으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애를 걸쳐 지켜온 시스템을 관철하기 위해 고독한 여로에서 내 20년의 생애는 승리이다.” 그 신여성은 “독선의 기미가 있는 젊음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아의 각성’이라 부르지만 그 실태는 투정이지요.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규제가 있어야 비로소 자유도 생기며, 그것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될런지.”(이쥬인 가게아키)
“그 눈은 세상의 밝음만을 빨아들인 눈이 아니었지요. 오히려 자아를 지키기 위해선 모든 것을 희생해도 거리낌이 없을, 아니 자아의 완성을 위해선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을 제물로 삼을 확신에 찬 독선이 결정을 이룬 눈이었지요.”(모리타 소헤이)
“히라쓰카 여사는 모리타 씨를 지배하고 길동무로 삼으려고 생각했지요? … 작품으로서의 삶이지요. 히라쓰카 여사에게 있어서 모리타 씨는 작품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한 점 색채에 지나지 않았어요.” “어쩌다가 스스로를 천재라 생각하게 되죠. 자신의 삶이 둘도 없는 작품처럼 보이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그 작품은 금방에라도 열다섯 살의 마음처럼 덧없이 하늘에 빨려들 것 같고, 또는 나이를 먹으면 추하게 시들 것이라는 불온한 예감이 결국 딱딱하게 결정을 이루고 그럴 바에야 지금, 바로 지금 작품을 완성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하죠.”(다쿠보쿠 이시카와)
메이지 42년. “4월 7일. 아사쿠사에서 생리적 낭비. 1엔 30전.” “당시 시내 전차 요금이 4전이었다. 4전 중 1전은 러일전쟁 협력금이었지만 전후에도 폐지되지 않고 이어졌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이 시대의 화폐 가치를 1990년경 엔화에 맞춰 계산하면 당시 1엔은 현재의 5000엔 정도 되지 않을까. 대략적인 계산이지만 그렇게 엇나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늘에 새빨간 구름의 색, 병에 새빨간 술의 색. 왜 이 몸이 슬픈지. 하늘에 새빨간 술의 색.”(기타하라 하쿠슈)
“모든 피부가 귀에 있어. 조용히 잠든 거리의 무거운 발소리.”(다쿠보구 이시카와)
“고센 사카이 도시히코. 그 너그러운 인격 때문에 후에 사회주의 운동의 지주가 된다.”
“메이지 37년 11월, 슈스이가 번역해서 평민신문에 발표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중국어, 한국어로 중역되어 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지침이 되었다. 하지만 <공산당 선언>을 게재한 신문은 바로 발간 금지, 책임자는 실형에 처해져 평민사의 경영은 점점 악화되었고 메이지 38년 1월 29일 주간 평민신문은 64호를 끝으로 종간하고 말았다.”
“메이지 38년 9월 5일, 포츠머스 강화로 러일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큰 희생을 감내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서 배상금을 받기는커녕 원래 일본령으로 여겨지던 사할린 남쪽의 할양만 인정받자 국민의 불만은 폭발하고 말았다. 강화를 반대하고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회가 강화파 신문사와 전차에 방화하는 사건으로 발전했다.”
“시대가 바뀌는 군. 그래 바뀔 것이네. 국권의 확대를 개인의 확대로 오해하는 행복한 시대는 끝났어. 이제부터는 국가와 개인이 적대하는 시대야. 국가와 사회주의자는 더 치열하게 적대하게 되겠지.”(고토쿠 슈스이 혹은 고토구 덴지로)
“러일전행 후 청년들은 동요하고 있습니다. 인텔리뿐만 아니라 젊은 직공들도 뭔가 불안합니다. 아니, 일본 그 자체가 목적을 잃은 듯합니다. 국가를 급조하느라 이 40년 동안 쌓인 피로, 그것도 알겠습니다. 일본은 많은 모순과 대면하며 잰걸음으로 걷고 있지요.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회개량의 뜻, 그것에도 한 점 양해를 해야겠지요. 하지만 이건 안 됩니다. 유신이라는 대업을 무위로 돌리는 생각입니다. 그들의 ‘혁명’을 내버려두면 선각자들이 이룬 ‘혁명’은 망가질 겁니다. 치안이 흐트러진 약소국은 다시 열강의 간섭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전 그것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 내일 7월 4일. 사이온지 내각은 총사퇴할 겁니다. 적기 사건의 책임을 지고. … 가쓰라 다로 씨가 이어 받겠지만 실제는 야마가타 님의 내각입니다. 아나키스트 청년들은 자신들이 휘두른 적기로 말도 안 되는 요괴를 불러들이고 말았다는 소리입니다.”(이쥬인 가게아키)
“당시의 형법에 따르더라도 대부분이 미죄 또는 무죄였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피고 26명 중 24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고 12명을 실제로 죽였다. 나머지 12명은 무기징역, 2명은 8년과 11년 유기징역이었다. 메이지 정부 수뇌는 단순한 미수사건, 또는 그에도 이르지 못한 조잡한 암살 계획을 의도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산업혁명이 진행되었고, 각지에 ‘노동자’라는 대중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미숙한 일본의 자본주의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일그러짐은 급속하게 확대되어 각지에서 노동쟁의를 일으키고, 동시에 그러한 불합리와 불평등을 규탄하는 ‘주의자’들을 낳았다. … 메이지 유신에서 40년이 지나니 예전의 청년 혁명가들도 늙었다. 혁명 정신도 퇴색했다. 그 무렵 정부 중핵의 정신을 지배하던 것은 겨우 쌓아올린 메이지 국가가 새로 도래한 상호부조 사상과 평등사상, 또는 대중의 권리 주장에 의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공포심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된 메이지 42년 이후에 거의 혼자 살아남은 원로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그 공포심을 더욱 강하게 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나친 위기 의식과 역시 지나친 방어 의식으로 사태에 임하여 전대미문의 대량 처형을 결단하고 실행한 것은 메이지 국가가 40년을 들어 키워낸 관료기구였다.”
“러일전쟁 후 일본은 어두운 소용돌이처럼 한 방향으로 가라앉으려 하고 있다. 국가의 의사와 국민의 의식은 벌어지고 다쿠보쿠가 말하는 시대폐색(時代閉塞)으로 향하고 있었다.”
“유신의 풍운은 아득히 멀어졌고, 국민과 국가의 일체감도 잃어버렸는데 자아라고 하는 귀찮은 짐을 등에 지게 된 근대의 청년은 性에 힘겨워하면서도 여성의 聖스러움을 동경한다. 그런 해답 없는 퍼즐에 놀아나고 있었다.”
“주의자들이 준동을 용납하여 선인들의 피로 이룬 성과가 오유(烏有)로 돌린다면 사이고를 비롯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진 수많은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네. 지난 러일전쟁으로 흙으로 돌아간 군인들에게 할 말이 없어. 러일전쟁은 적의 손끝이 살짝 먼저 바닥에 닿은 신승(辛勝) 지나지 않네. 국민들은 그것을 몰라. 배상금을 받아라, 사할린 전체는 물론이고 바이칼 호수 동쪽을 우리 영토로 편입해라,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지. 결국엔 수도에서 폭동을 일으켰어. 대체 국민이란 무엇인가. … 사회주의도 무정부주의도, 이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눈에 흙이 들어간 다음에 성대히 하라고 하게. 불초 야마가타의 유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내분을 일으킬 씨앗은 단 한 알이라도 용납하지 않을 각오일세. 끔찍하고 가엾기는 하지만 슈스이, 간노, 오이시 일당은 죽어줘야만 하네.”(야마가타 아리토모)
“나쓰메 씨, 우리 국민의 성정을 잘 알고 계시지요? 기민하지만 타산적이고, 활동적이면서 서정적이고, 생각은 얕으면서 말은 많고, 경솔하게 흥분했다가 갑자기 비관의 늪에 빠지지요. 옛 막부 때부터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그런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일본은 전시에 러시아혁명당의 원조를 받아 후방교란을 계획해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러시아보다 빈부격차에 의한 갈등은 적지만 어슬프게 교육이 잘되어 있는 만큼 인심은 쉽게 동요합니다. 이득이 30 있어도 70의 해는 피하기 어렵지요. 더 나아가 18세기 말 신사적으로 가장해서는 뻔뻔하게 세계를 석권하고 자신들이 사회 진화의 극이라며 우쭐대는 백인은 황인의 대두를 내심 격렬히 증오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일본만의 각성에 머무르지 않고 아시아 전역에 애국자결 분위기가 퍼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지요. 실제로 영국은 영일동맹을 끝내려 하고 있지요. 포츠머스에선 호의적이었던 미국도 요 2, 3년 사이에 이민법을 성립시켰고 일본을 새로운 가상의 적으로 사정하고 전쟁 연구에 돌입했습니다.”(이쥬인 가게아키)
“우리 청년들을 둘러싼 공기는 이제 조금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권력자 세력은 국내에 골고루 퍼져있다. 이와 같은 시대폐색의 현상에 대해 우리 중 가장 급진적인 무리가 어떤 방면으로 그 ‘자기’를 주장하는지. 한 몸을 던져 이 폐색을 부수려고 했던 테러리스트들 … 내게는 그들의 마음이 이해된다.”(다쿠보쿠 이시카와)
“씨름꾼이 꽉 맞잡고 있을 때 씨름판 한가운데 선 그들은 의외로 조용하지. 하지만 그 속에는 1분도 되지 않는 사이에 무서운 파도가 치지. 땀은 끝도 없이 흐르고. 두 싸움꾼이 겉보기에 침착한 건 서로를 이기려고 하는 힘이 겨우 평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고 이를 호살지화(互殺之和)라 하지. 내 생활도 마찬가지야. 나는 일하면서 조용히 나날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실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세상과 싸우며 호살지화의 피땀을 흘리고 있지. 부드러운 웃음 밑에 살벌한 기운이 솟구치고 있었네. 관의 권위를 빌리지 않고 또 조직의 일원이 되지도 않고 자활자영(自活自營)의 길을 걷는 개인에게 있어서 자영은 공평하고 냉혹한 적일세. 그리고 사회는 부정하고 인정이 있는 적이지. … 그렇게 생각하는 나마저도 하루에 몇 번이고 스스로의 적이 되네. 지쳐도 멈출 수 없는 싸움을 지속하면서 아무도 없이 혼자 늙은 것 비참하다고 할 수밖에. 비참하다고 할 수밖에 없지. 난 관의 신세를 지지 않겠네. 대학의 신세를 지지 않겠네. 박사 칭호의 신세도 지지 않겠네. 그냥 나쓰메 긴노스케로 이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우연히 태어난 이 세상에 머무를 심산이야. 필요 없는 건 필요 없는 거야. 싫은 건 싫은 거야.”(나쓰메 소세키)
* 자아, 각성된 자아. 국가의 영도로 근대의 문턱을 넘어섰으나 러일전쟁 후 그것과 결별하고 표묘한 번롱에 갇힌 채 헤매고 신음하며 울부짖었다. 도련님은. 소세키, 오가이, 이시카와, 슈스이 … 혹독한 근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 넘쳤던 메이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