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18th, 2017

January 18, 2017: 11:59 pm: bluemosesErudition

예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셨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한복음 5:16‭-‬19)

: 11:21 pm: bluemosesErudition

“에라스뮈스는 라틴어 격언집 <아다기아>에서 ‘아르킬로코스적 발언’(Archilochia edicta)이란 경구를, “악의적인 표현”이라는 뜻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전설에, 그의 고약한 인신공격을 견디다 못한 처갓집 식구가 자살을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랄까요.”(김태권)

: 10:51 pm: bluemosesErudition

北宋 960~1127, 王安石 1021~1086 | 靖康之變(金朝) | 南宋 1127~1279, 朱熹 1130~1200

: 7:41 pm: bluemosesErudition

“누구든지 과거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관해서 읽거나 심지어는 쓸 수 있고, 혹은 제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가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하고는 만족스러워 할 수도 있는데, 그 말로 웬만큼 사실이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E. H. Carr)

조지프 나이는 『국제분쟁의 이해』에서 2차 대전 발발을 다음의 3단계로 설명한다: 근본원인(deep causes), 중간원인(intermediate causes), 촉발원인(precipitating causes).

: 5:43 pm: bluemosesErudition

“학자의 관점이나 논문, 이를 발표하는 저널, 연구주제나 연구대상 등은 여러 행위자들 간에 존재하는 객관적 관계구조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점은 앞으로의 성찰을 위해 중요한데, 아인슈타인의 은유를 다시 사용한다면 행위자들 간에 존재하는 객관적 관계구조가 바로 장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객관적 관계구조’는 행위자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결정해줍니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구조 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그들의 입장을 결정하거나 적어도 소극적으로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경제학자나 작가 또는 예술가 등 특정 장에 속해 있는 행위자의 말이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이 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입장을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행위자가 전체 사회공간에서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위치, 즉 맑시즘의 전통에서 계급조건이라고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1968년 시기에 ‘그가 말하는 곳’(d’ ou il parle)이라고 상당히 막연하게 불리던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자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장의 구조를 만들어낸 객관적 관계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이 구조는 특정 순간의 과학적 자본의 분배에 따라 결정됩니다. 달리 말해 소유자본의 양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각각의 행위자(개인 또는 기관)들은 자신의 비중과 다른 모든 행위자들의 비중, 즉, 전체 공간에서의 비중에 의해 장의 구조를 결정합니다. 동시에 각 행위자는 반대로 공간의 구조가 주는 제약 속에서 행동하기도 하는데, 그 제약은 자신의 비중이 작을수록 강력하게 강요됩니다.” _ 피에르 부르디외, <과학의 사회적 사용>, 창비, 2002, 27~28쪽.

: 2:23 pm: bluemosesErudition

“1918년 4월, 이제 카는 확실히 러시아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다른 외무부 직원들처럼 러시아어에 능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암거래 단속국에서 러시아와 인접 국가들과의 관계를 다루는 북유럽과로 부서를 이동했다. 그곳에서 그는 세 사람으로 구성된 팀의 막내로서 정치적 차원에서 볼 때 볼셰비키 혁명이 만들어낸 문제들을 처음으로 다루게 되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보통의 외무부 직원’이었다.”(57쪽)

: 1:01 pm: bluemosesErudition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은 현재 두 가지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나는 20세기 후반 다양한 분야에서 등장한 새로운 예술 사조를 지칭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적 사유를 비판하면서 그에 대한 대립항으로 등장한 사상적 흐름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둘은 모두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구체적인 맥락에서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예술적 경향에 대해서는 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사상적 경향에 대해서는 이 용어를 피하여 탈근대적(혹은 탈현대적) 사유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서영채)

: 12:35 pm: bluemosesErudition

“王安石(1021~1086)은 38세 되던 해인 仁宗 嘉祐 3년(1058) 10월 江南東路 提點刑獄으로부터 중앙으로 불리워져 三司度支判官에 임명된다. 당시 정치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朝野에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 兩浙路 明州 知鄞縣으로서 수년간 근무하면서 올렸던 탁월한 治積이라든가, 혹은 거듭된 중앙의 발탁에도 불구하고 모두 固辭하고 지방관으로 전전했던 점 등이 世間의 士大夫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특히 후자, 즉 관직에의 無慾은, 상위관직으로의 진출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이 빚어지던 당시의 관계 분위기에서 커다란 美德으로 云謂되고 있었다. 이렇듯 중앙 요직으로의 발탁을 고사하고 있던 王安石이 모처럼 중앙관을 수락하고 조정에 나아가면서 올리는 復命書가 바로 여기서 소개하는 「上仁宗皇帝言事書」이다.”(이근명)

“지금은 모두가 … 정기가 소진되고 정신이 피폐되어도 온종일 과거 공부만 시킵니다. 그러다 등용되면 지금까지 한 공부를 죄다 버리게 하고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일을 맡깁니다. 해야 할 일을 완수할 줄 아는 인재가 적어진 까닭입니다. 그래서 제가 [과거는] ‘사람의 능력을 계발해주기는커녕 사람을 몹시 괴롭히고 파괴하여 무능력자가 되게 한다’고 아뢨던 것입니다.”(王安石)

“그의 눈길은 자연스레 과거제도로 쏠렸다. 대다수가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오르는 현실에서 과거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학교가 ‘과거 수험용 학원’으로 전락함은 그다지 이상할 바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과거에서 평가하는 역량이 ‘된 사람’, ‘든 사람’ 여부를 판정하는 것과 멀었다는 점이었다. 당시 과거에선 주로 시 짓기와 경전 암기를 시험하고 있었다. 왕안석이 보기에 이것으로는 국가 대소사라는 공적 직분을 수행하는 데 요청되는 실무적, 도덕적 역량을 잴 수 없었다. 하여 수험자의 경세 역량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과거를 개혁했다. 도덕적, 실무적 주제에 대한 논변인 논(論)과 책(策)의 작성을 과거의 핵심으로 삼았다. 다만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는 관리가 되는 길을 다변화했다. 학교에서 교육만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소정의 평가체제를 통과한 이는 과거 급제에 준하여 임용케 했다. 교육 연구 기능만 수행했던 학교에 관리 임용 기능을 더한 것이다. … 그가 제시한 개혁의 핵심은 양사와 취사 모두 경세 역량을 중심으로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국가 대소사를 제대로 처리하는 능력의 구비로 설정되었고, 평가도 관련 주제로 작성된 논, 책에 기초해 수행됐다. 관리는 이렇게 학교에서 검증된 인재로 충원되었다. 학교에서 ‘논정(論政)’, 곧 국정에 대한 의론을 상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여지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셈이었다. 이는 학교를 논정의 공간이자 여론의 장으로 본 전통적 관념의 복원이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학교는 교육 연구 기능과 관리 등용 기능, 의회 기능을 겸한 유서 깊은 문명 장치로 다시금 우뚝 설 수 있었다.”(김월회)

: 12:23 pm: bluemosesErudition

하버드대 로빈 워드 박사가 1977년 이후 하버드를 졸업해 40대에 접어든 졸업생 16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현재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90% 이상이 ‘글쓰기’라고 답했다.

: 12:21 pm: bluemosesErudition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같이 떠오르기도 했다. 함부로 살았어도 사람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초상화가 추악하게 변해 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 말이다.”(전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