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는 숨은 재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윔 메이즈넌, 암스테르담대 교육학과 교수이자 네덜란드 정부 공교육 정책 자문위원)
“네덜란드에는 숨은 재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윔 메이즈넌, 암스테르담대 교육학과 교수이자 네덜란드 정부 공교육 정책 자문위원)
닉 데이비스가 2000년에 보도하고, 이병곤이 2007년에 번역한 <위기의 학교 The School Report>를 보면 ‘브렉시트’의 뿌리를 가늠할 수 있다. 그것은 공교육의 붕괴와 좌절,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경멸이다.
벤야민은 부분(Fragment)을 전체(grand conception)에 입각하여 재배열하는 것을 ‘몽타주’라고 지칭했다. “벤야민을 이해하려면 상상력, 꿈, 개념, 표현과 같은 신비한 것들만을 파악해서는 안 되고 그것들이 근거하고 있는 물질세계까지 연결시켜야” 한다.
“마페졸리의 현실 인식은 거대 담론의 좌초와 연관되어 있다. 그가 보기에 현대의 주된 흐름은 ‘모더니티의 가치에 대한 식상’이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분명 ‘대안적 가치들’이 등장하게 마련이거니와 이것들은 ‘지적 정통성과 단절’함으로써만 알아차릴 수 있는 ‘공동체적 이상’이다.” “모더니티의 종언, 공동체의 등장, 근본 요소로서의 이미지와 통합 요소로서의 신비 그리고 그러한 것들의 시대적 총체성으로서의 스타일 - 이것이 마페졸리가 ‘현대를 생각’한 뒤에 내놓은 테제이다.”
“다빈치는 방식(manner)과 양식(Stil)을 구별해서 썼다. 전자는 우연적/개인적 성향이요, 후자는 새로운 예술 형식과 방법론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래서 천재는 사태의 본질에 관여하여 이를 개념적으로 파악해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구현한다. Stil 안에는 지적 파악을 구현하는 방법까지 들어간다. … 르네상스적 천재는 Stil을 만들어낸 이들이요, 낭만주의적 천재는 그저 manner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그렇겠죠. 그걸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배우가 되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 그건 즉발적인 건데, 모든 종류의 작품은 …… 그렇죠.”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역사에 대해 순간적으로 감흥을 얻어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만드는 거거든요. 성찰의 기회를 짧은 시간에 얻는 거예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이. 반면에 개인의 존재에 대해 사고하는 방법, 타인과 사물, 사건을 분석하는 방법,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 그걸로 가치관, 세계관을 갖도록 만드는 거라면 그건, 교육이죠.” “예,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얻어낼 수 있는 거고, 그건 단계가 있는 거구, 그 효과를 확인하면서 실행할 수 있어요. 하지만 예술 작품은 그보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경험이죠. 순간이에요. 어떻게 보면 음악이나 연극처럼 시간에 구애받는 예술은 훨씬 즉발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 강력한 뭔가가 필요한 거겠죠. 감흥! 예, 그런 걸 거예요. 맞아요, 감흥. 그게 없다면 …… 별 것도 아닌 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특별한 감흥이 필요한 거예요. 아마도 다른 장르보다 더, 꾸미거나 덧칠하기가 어려울 거예요. 예, 그렇겠죠, 아마도. 알고 있는 것, 느끼고 있는 것, 그게 아니면, 그게 결여되어 있다면 사람들을 어떤 단계까지 끌어올릴 수 없을 거예요. 서술이 불가능하니까요. 그렇죠. 감흥! 헌데 사람들은 예술가의 감흥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감흥에 대해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 만드는 쪽에서, 만드는 사람들이 그걸 잘못 이해하면 순간적인 감흥으로, 즉발적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그런 것이 창작이라고 생각하기 쉽죠. 그건 명백한 오해죠. 즉발적으로 감흥을 받는 건, 수용자죠, 받아들이는 쪽이에요. 만드는 사람들은 아주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야 하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발상 따위의 말을 믿는다면 그건 순진한 거예요. 그럴 수 없어요.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겪은 후겠죠. 그럴 거예요.” “물론 예술가에게도 감흥은 중요해요. 예술가도 자기 작품에서 벗어나면 수용자니까.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 통찰력, 그리고 의지, 소통하려는 의지죠,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제시력! 제시력이에요. 제시할 수 있어야 비로소 예술가인 거죠. 예, 때때로 우린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을 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모두 예술가가 될 수는 없어요. 소통하려는 의지, 강렬한 욕구를 가진 사람도 있어요. 그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런 의지가 조건이라면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지금보다 많을 거예요. 결국, 예술적인 방법으로 …… 제시할 수 있어야죠. 그래요, 예술은 제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죠. 이 제시의 패턴이 고유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걸로 우리는 어떤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대해 평가를 내려요. 그걸로 …… 그러니까 매듭이 지어지는 거죠, 통찰력과 의지가. 제시력으로.”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 “어떻게 내놓을 것인가 ……” “어떻게 자기 자신을 ……”
_ 송선호, <어떤 동산>, 2016.
L’Education sentimentale, 1869
1864년 봄. “나는 파리에서 벌어지는 현대적인 삶에 관한 소설에 매달렸다. 난 내 세대 사람들의 도덕적 역사를 쓰고 싶다. 정확하게는 ‘감정적인’ 역사라 함이 옳을 듯.” 이러한 연유로 집필된 <감정교육>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존경에서 우러난 연애는 동정에서 시작한 연애보다도 긴 생명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더욱 깊게 숨겨진 동기는 항상 오해에 기반한 자기애에 지나지 않는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이 책에 전적으로 굴복한다.”(프란츠 카프카)
렘 콜하스. 194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출생. 영국 런던 건축협회학교(AA School) 이수.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교수. 시애틀 중앙도서관(2004), 서울대학교 미술관(2005), CCTV 본사(2008) 등 설계.
은하수는 내가 7년차였을 때 이미 20년차 이상의 선배들도 꽤 있었다. 그만큼 선배들의 위치가 안정적이었다. 2009년 주명건 회장이 오자마자 “호텔에 누가 죽을 먹으로 오냐”며 팥죽, 호박죽의 재료를 바꿨다. 나이 지긋한 단골손님들은 대번에 맛이 틀렸다며 발걸음을 끊었다. 예전에는 계약농가에서 재료를 직접 가져왔다. 늙은 호박이 산더미처럼 들어오면, 모든 조리사들이 나가서 껍질을 벗겨 냉동실에 보관하며 호박죽을 냈다. 김치도 직접 담았고, 장도 직접 담아 호텔옥상에 항아리들이 즐비했다. 지금은 인원도 21명에서 14명으로 줄었고, 경력직조리사도 7년차가 최고참이고 은하수 출신은 1명이다. 반제품도 들여다 놓는 것 같고, 조미료도 사용하는 것 같다.
제과제빵도 이제 만들지 않고 밖에서 사온다. 주명건 회장은 창업주였던 부친과 경영권을 두고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부친이 만들어온 ‘은하수’ 이미지를 없애고 싶었을 수도 있고, 40년 가까이 이어온 한식조리사들의 조직력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주명건 회장은 ‘은하수’의 명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 우리나라 호텔음식에서, 한식에서 세종호텔 ‘은하수’는 없어졌다. ‘은하수’의 이름을 ‘엘리제’로 바꾸었다고, ‘엘리제’의 전통이 40년이라고 세종호텔은 홍보하고 있지만 거기에 그걸 지킨 사람들은 없다. 사라진 것은 ‘은하수’라는 이름만이 아니다.
_ 세종호텔 한식부페 조리지원팀 한인선(2016. 10. 17.)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 we can not consecrate, we can not hallow 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1863.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