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10

January 27, 2010: 2:59 am: bluemosesErudition

‘자존감’이 약해지면, ‘자존심’이 강해진다. 자아의 경계가 축약되어 제 자신만 감싸 안게 되어서

January 26, 2010: 10:16 pm: bluemosesErudition

1. “의존증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이중세뇌’(二重洗腦)라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잠재돼 있다. 의존에는 ‘신체적 의존’과 ‘정신적 의존’ 두 가지가 있다. 한 예로, 몇 개월 혹은 몇 년이나 잘 지켜오다가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것은 신체적 의존이 원인이 아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몸에서 이미 니코틴이 빠져 나가기 때문에 ‘니코틴이 부족해 담배를 피우고 싶어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담배를 피우는 것은 ‘심리적 의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식사를 하면 뇌내의 보수계가 자극받아 안식과 평온을 느끼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런데 흡연자는 식사를 해도 도파민이 잘 나오지 않는다. 니코틴의 만성적인 영향으로 뇌의 감수성이 둔해져 있어, 니코틴 없이는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는데도 왠지 허전하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면 도파민을 강제로 분비시키는 담배부터 찾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마음의 함정’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러한 무자각은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게 하는 커다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신체적 의존은 의외로 빨리 낫는다. 문제는 심리적 의존이다. 심리적 의존은 방치하면 계속 남아 있기 때문에 또 다시 손을 대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심리적 의존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2. 금연 후 체중이 증가하는 이유는 포만감을 느낄 때까지 과식해서일까. ‘식후땡’을 하지 않으면 도파민 분비가 지연된다 하니 일리가 있다. 정신적 욕구가 후천적으로 형성된 신체의 필요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신체적 의존과 정신적 의존을 구분하는 저자의 접근은 재고할 여지가 있고, 의존 극복의 관건 역시 ‘절제의 습관’이지 ‘오인의 교정’은 아니라 하겠다. 이래저래 ‘생체정치’를 다시 보게 된다.

: 5:11 pm: bluemosesErudition

1. 마음판을 자아의 실현에서 공동체 영성으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 나의 것은 결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여분을 나누지 않고 쌓는다면, 주께서 축복하실 이유가 없지 않은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2. 어떻게 마음판을 변혁할 수 있는가. 옛 자아와 매순간 싸우는 수밖에 없다.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고 청종하자.’ 그리고 <Faith on Trial>을 읽자.

: 3:35 am: bluemosesErudition

“린쯔(Linz, 1994)에 따르면 대통령과 의회는 정통성을 놓고 경쟁하는 입장에 놓여있다. 그러나 정책의 입안과 수행을 위해서 대통령은 의회의 협력을 확보해야 한다. 대통령과 의회는 ‘상호독점적’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도 의회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소정당이 기존의 정당을 이탈하여 새로운 다수를 형성하고자 하는 수단으로의 새 정당의 창당을 선택하는 전략적 선택이, 정계개편을 통해 통치안정을 확보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전략적 선택과 맞물릴 때 정당체제의 불안정은 높아질 것이다. 논문은 대통령과 정당간의 교환에 따른 인위적 정계개편을 남미의 정당체제 불안정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논문은 남미의 15개국의 55개의 사례를 대상으로 OLS 회귀분석을 수행했다. 논문의 발견은 정당체제 불안정이 극대화되는 것은 강한 대통령제와 약한 대통령제에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권력이 중간수준일 때라는 것이다.” _ 최장집은 후학들에게 정당의 경합을 보장하는 시스템의 구축을 역설하며, ‘정치공학’을 전수하였는지도 모른다.

January 25, 2010: 6:55 pm: bluemosesErudition

“내가 의로운 사람에게 말하기를 ‘너는 반드시 살 것이다’라고 하였어도, 그가 자신의 의로움을 믿고 악을 행하면, 그가 이전에 행했던 모든 의로운 일들이 하나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악한 일들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악한 사람의 악함이라도 그가 악에서 돌이킬 때는 그를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다.”(겔33:12~13)

공의는 늘 우리 앞에 있다. 언제나 이미 현재를 대면하는 인간이 의로울 수 있는가. 인간이 의로움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공의(심판)에서 사랑(은혜)으로’ 도약하는 믿음이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 6:35 pm: bluemosesErudition

정의 없는 강도 조직 수준의 나라는 필히 재앙을 맞게 돼 있고 그 궁극에 가서 망국을 맞게 돼 있습니다. 근대 일본의 예언자이자 함석헌의 스승 우찌무라 간조가 군국 일제보고 하던 소리인데, 지금 대한민국보고 해야 할 이야기인 듯합니다.”

: 5:49 pm: bluemosesErudition

1. 청소, 빨래, 밥짓기, 설겆이, 구두손질 등의 행위는 [나에게]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섬김의 일환이라면 ‘의의’가 있다. 왜일까?  주지하다시피 섬김은 외화된 노고가 귀환되지 않는 Poiesis다. 다시 말해, 섬김은 소외를 전제할 뿐더러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김으로써 우리가 풍성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자아에 국한되어 있던 사랑이 확장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섬김은 Labour도 work도 아닌 Activity로서, 자아의 경계를 공동체로 확대시킨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주러 왔다.”(마20:28)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1)

2. “부르주아 사회의 발전이 ‘주민의 상당 부분을 세상사에 무관심한 농촌 생활에서 떼어내었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많은 언급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마르크스가 농촌 환경에 대해 도시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경멸 — 뿐만 아니라 무지 — 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재미있는 이 독일어 구절(dem Idiotismus des Landlebens entrissen)을 실제로 분석해보면 Idiotismus는 ‘우매함’이 아니라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가진 ‘좁은 시야’나 ‘더 넓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는 그리스 어 ‘idiotes’가 가진 본래의 의미를 반영하는 것인데, 이 단어로부터 현재 쓰이는 ‘idiot’나 ‘idiocy’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자신의 사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질 뿐 더 넓은 공동체의 일에는 무관심한 사람.’ 1840년대 이후 몇 십년이 지나면서 — 그리고 마르크스와는 달리 구성원들이 고전에 대한 교양이 없던 운동 속에서 — 본래의 의미는 증발되었고 오독이 일어났다.” - Eric Hobsbawm

: 3:40 pm: bluemosesErudition

관계의 교류를 量化한 사회연결망, 이것들(A, B)로부터 어떠한 ‘교육사회학’적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School to Work? Learning Complex Ecosystem? Community-laden Person?

January 24, 2010: 1:31 am: bluemosesErudition

“나는 이런저런 곳에서 누차 이야기했지만, 공적인 자리에 앉아 있는 이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워낙 그런 게 많다. 출세를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일정한 거짓말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다. … 혹시라도 거짓말을 했거나 세간의 상식에 비추어봤을 때 문제되는 행동을 했다면, 공인은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엔 이념이 없다. 아니 나는 이념을 떠나 극우든 극좌든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깨끗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응원한다.”

January 23, 2010: 11:59 pm: bluemosesErudition

“The majority is deeply wrong on the law. Most wrongheaded of all is its insistence that corporations are just like people and entitled to the same First Amendment rights. It is an odd claim since companies are creations of the state that exist to make money. They are given special privileges, including different tax rates, to do just that. It was a fundamental misreading of the Constitution to say that these artificial legal constructs have the same right to spend money on politics as ordinary Americans have to speak out in support of a candidate.” “Now a similar conservative majority has distorted the political system to ensure that Republican candidates will be at an enormous advantage in future elec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