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주께 나의 최선을”
1. “하르트만(1882~1950)과 달리 딜타이(1833~1911)가 ‘새로운 철학자’로 다가왔던 이유는 새로운 방법론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그 방법론이 뭔가?” “체험 내용을 기술함으로써 정신적 삶에서 표현된 구조적 관계를 파고 들어가 재내면화하는 작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재내면화!”
2. ”재내면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학적 (혹은 인식론적) 성취는 무엇인가? “재내면화(딜타이에서의 이해 개념)는 외면화된 표현에서 체험 내용으로 되돌아가는 역추리”를 의미하고, 그것의 학적 의의는 “경험론자들과는 달리, 직관 이외의 유동적인 요소(태도 같은 것)까지 고려하여 인식과정을 좀더 종합적이고 생동적으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3. “딜타이의 문제 상황은 결코 무심코 보아 넘길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딜타이는 생철학이라고 하는 시대적 조류에 직면해 있었다. … 독일 관념론 시대의 끝물에서 생철학의 강한 공격에 맞서 그것에 대한 변호를 했던 사람이다. 여기서 딜타이의 글(<역사적 이성 비판에의 초고Entwürfe zur Kritik der historischen Vernunft>) 하나를 인용하자. ‘생의 현실성에 속박되고 규정된 인간은 예술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것의 이해를 통해서 해방된다.’”
4. “추체험追體驗과 가장 연관된 개념은 이해Verstehen이다. 딜타이의 해석학Hermeneutik 저작에 … ‘우리는 파악함에 있어 모든 마음의 힘을 함께 작동시키고 그 마음의 힘을 대상 속으로 몰입시킴으로써 이해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체험을 즉물적으로 이해한 입장은 生심리주의이다. 이는 그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한 마디로 욕망으로 귀착된다. 生심리주의에서 시작한 딜타이는 객관적 정신주의로[까지] 전환해 간다. 객관적 정신주의로 [나아]갔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진정한 추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운찬 총리는 2010년 6월 14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세종시는 국책사업이다. 역사의식과 애국심이 있다면 정략적으로 만든 세종시 (원안을) 지지하지 못할 것”이라 주장했다.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그는 731부대와 항일독립군을 혼동하였던 자다. “역사의식과 애국심” 운운하며 지대추구자의 사리사욕을 옹호하는 이가 “그 분들[참여연대]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정운찬 총리가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물었는데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모든 국민들이 일치되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가. 다른 생각이 있는데도 침묵해야 하는가. 그렇지 못하면 이 나라 국민이 아닌가. 그런 발상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참여연대 이적행위 논란을 보며, 몇 해 전 서거한 솔제니친의 망명이 떠올랐다.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4대강 사업을 추진하고, 정부와 상반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이적행위로 간주되는 곳, 여기는 전체주의 국가이다.
Bildung oder Heiligung des Gottesvolkes
성화의 여정에 관한 두 권의 고전: 단테의 <신곡>과 헤겔의 <정신현상학>
1. 인간을 추동하는 힘은 체제와 운동으로 양분되며, 체제와 운동은 각각 ‘이성과 이익’과 ‘손해(혹은 공포)와 감정’으로 세분된다. 손해와 감정이 체제가 아닌 운동인 이유는 그것들이 파멸과 맹목의 영구적 일시성에 근간하기 때문이다.
2. 귀결을 알면서도 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손익을 재단하고, 이성을 도구화하는 욕망의 지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일단 Loïc Wacquant의 연구성과를 참고하여 구조와 행위를 연계하는 ‘장(場)의 교육’을 탐구하자: 명석한 어리석음에 관한 한 연구.
“예수가 기독교의 창시자라면, 바울은 정초자다. 定礎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틀이란 원리와 방법을 의미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철학의 원리>와 <방법서설>을 저술한 데카르트는 합리주의의 창시자인 동시에 정초자라 할 수 있다.”
유대감의 망실, 즉 원자화와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도구화가 야기한 ‘부조리’는 타자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치부하여 인격적 질서를 즉물적 충동으로 훼파시켰다. 사이코패스는 이러한 부조리의 산물이며, 카뮈의 <이방인>은 상술한 바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돈 5달란트를 잃었을 때는 심각해지는 이들도 정작 자기를 잃어버린 데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절망에 빠져 있음을 알지 못하는 절망”에서 “자신이 절망하고 있음을 깨닫는 절망”을 거쳐 “자신에 대한 절망”에 이르기 까지 “인간 스스로는 결코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키에르케코르는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라 신앙이다.” “믿음은 절망에 대한 안전한 해독제이다.”
1. 루이 16세와 정략결혼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1755년 11월 2일, 빈에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토스카나 대공인 프란츠 1세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녀이자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여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이에서 15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2. 1809년 5월 21~22일 오스트리아의 아스페른-에슬링에서 벌어진 오스트리아군과 프랑스군 사이의 전투. “나폴레옹은 이 전투가 있기 전까지는 패배를 몰랐다. 그러나 이 전투에 패배함으로써 자신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은 반면, 적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에슬링 이후 유럽 전역에서 민족주의가 발흥한다.”
3. “독일과 이탈리아 통일 과정의 공통점은?” “통일의 방해 세력인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격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