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11th, 2010

November 11, 2010: 10:36 pm: bluemosesErudition

“우리가 실제 도덕적 목표나 윤리적 목표를 선택하려 할 때 우리를 추동하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열정이다”라는 로버트 달의 단언은 “이성이란 정념의 노예일 뿐”이라고 말했던 데이비드 흄의 철학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 12:27 pm: bluemosesErudition

“관리보다 교사로서의 운명을 가진” “공자는 명성을 얻기 어려운 유형의 사람이었다. 즉각적인 호소력이 없기 때문이다.” 공자는 “은자들이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자신이 그들을 따라 바꿀 수 없는 이유가 인간이 금수와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드높은 목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결과를 빤히 예상할 수 있고 자기 수고의 덧없음을 느낄 때라도 단계를 건너뛰거나 노력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다.” “정치활동을 포기함으로써 이 세상의 현실적인 일들로부터 물러나는 바로 그 시점에서, 공자는 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군자의 덕을 키우는 데 있다는 믿음을 한껏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군자의 덕이란 지식을 행동으로, 이상을 정치로, 시를 자기 생각의 표현 언어로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환시키는 특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불안한 곳으로 본다는 점에서 공자는 순자와 관점을 같이 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멋대로 가지고 노는 폭군이 나타날 수 있는 곳이 이 세상이다. 그렇다면 그저 폭군들에게 개혁을 말로 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철학자에게는 그것을 넘어 할 일이 있다고 공자는 말할 것이다.”

“경지에 이르렀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孔子) “나라 일을 해도 이름이 알려지고 가문 일을 해도 이름이 알려지는 것입니다.”(子張) “네가 말한 것은 명성이지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孔子) _ <논어> 안연편.

“공자의 <논어>에 정언편이 있어. 제자가 공자에게 ‘정치의 요체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데 대해, 공자는 ‘사물의 이름(명칭 또는 명분)을 정확하게 쓰는 것이다’라고 답했어요. … 모든 형태나 관계나 성격이나 형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를 사용해야 인간 상호간의 생존에서 혼란을 예방할 수 있고, 또한 그 사고의 주체인 개인의 의식과 행위에 괴리가 생기지 않는 것이에요.”(374쪽)

* 그런데 <논어>에 정언편이 있던가.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먼저 행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을 것이다.” “이런 생각만 하시다니, 선생님의 현실 감각이 떨어지십니다! 어째서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자로야!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제쳐두는 법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자연스럽지 못하며, 말이 자연스럽지 못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며,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을 적절하게 쓸 수 없게 되며, 형벌을 적절하게 쓸 수 없게 되면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떤 것에 대해 이름을 정하면 반드시 말로 할 수 있어야 하고, 말을 한다면 반드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군자는 자기 말에 대해 구차한 상황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_ <논어> 자로편.

: 12:25 pm: bluemosesErudition

사막에 나무를 심고, 나무가 열매를 맺어 숲을 이루게 하는 삶

*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