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 1959~)가 2006년 미국 금융체제와 자산시장 구조를 분석하여 서브프라임 시장 붕괴를 필두로 한 전면적인 금융 붕괴(meltdown)의 가능성을 경고했을 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구적 금융체제의 일대 파란을 예고하는 루비니의 주장이 가지고 있는 ‘선정성’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을 테지만, 경제학자들에게는 그의 논리와 주장이 너무나 이단적인 것으로 보였다. … 당시 학계의 어느 저명한 경제학자가 말했듯이, ‘루비니의 주장에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리 모델이 없다’는 것이었다.”

2. “수리 모델 대신 루비니가 가지고 있었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지구적 자산 시장의 상호 연관 그리고 이를 감싸는 금융 체제 전반의 돈의 흐름을 꼬장꼬장하게 기록하고 따지는 것이었다. 루비니의 업적에 대해 조금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그의 주장은 사실상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과 같은 기상천외의 독창성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성실한 관찰자의 꼼꼼한 현실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3. “국가 재정의 금고를 불리는 방법에 대한 연구에 불과했던 정치경제학은 18세기에 들어오면서 … 영구불변의 자연법적 질서를 찾아내는 학문으로 심화(혹은 변질)되었다. … 시장의 완벽성이라는 “자연법”에 대한 신앙은 이후 오늘날까지 300년이 흐르도록 무너지기는커녕 갈수록 더 강화되어왔다.”

4.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 내재한 법칙이 … ‘조화’가 아니라 ‘위기’라고 주장하는 “위기의 경제학”은 이미 19세기부터 존재했었다. … 시장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실물” 영역에서 찾고자 했고, 이 모순을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최초의 인물은 시스몽디(Simonde de Sismondi, 1773~1842)였다. “시장주의자들이 신봉하던 ‘수요와 공급은 반드시 일치하게 되어 있다’는 이른바 ‘세이의 법칙(Say’s Law)’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고, 자본주의의 소득분배 구조상 유효수요가 필연적으로 부족하게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위기와 공황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는 그의 주장은 20세기 초 홉슨(J. A. Hobson)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5. “20세기 위기의 경제학은 ‘실물’이 아닌 ‘금융’ 부문에서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찾기 시작한다. 20세기 들어 거대한 규모로 벌어진 자본 시장의 발전, 공고하고 잘 짜인 금융 체제의 성립 등이 나타나자 금융은 더 이상 예전에 생각하는 것처럼 실물 영역의 생산과 분배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위치를 훨씬 뛰어넘어서 오히려 생산과 분배와 소비 전체를 조직하는 핵심적 계기를 틀어쥐고 있는 영역이라는 인식이 나타나게 되었다. 케인스는 이 점을 가장 투철하게 인식했던 이들 중 하나이다. 그는 비슷한 통찰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금융 부문의 균형은 결국 실물 부문의 균형에 종속되게 되어 있다는 동시대인들의 낙관론에 맞서서, 그렇게 핵심적 계기를 틀어쥔 금융의 영역이 투자자와 금리 생활자의 심리학처럼 생산의 합리성과는 전혀 동떨어진 원리들로 좌우되는 영역이라고 강조하였다.”(cf. liquidity preference theory)

6. “케인스의 본래 논지에 충실하여 금융 부문에서 자본주의의 본질적 위기의 경향성을 찾아나가는 작업을 이은 이가 하이먼 민스키(Hyman Misky)이다. 민스키는 슘페터의 신용화폐론과 은행이론에 근거하면서도 현실에 존재하는 자본주의적 영리기업과 은행의 행태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일종의 ‘제도주의적 전환’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금융시장은 필연적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금융위기가 생겨날 경우 부채 디플레이션의 형태로 만성적인 공황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자본주의 영리기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연적으로 과도한 부채에 의존하는 폰지(Ponzi) 상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스스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 불과한 은행은 이를 부추기면서 결국 경제 전체를 과도한 부채 상태로 몰고 가는 원동력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cf. Post/New-Keynesian)

7. “정말로 그는 이러한 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까? 그가 비판한 지난 몇 십 년간의 금융 체제를 만들어낸 현실의 힘들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과연 이 위기를 통하여 이 힘들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민스키의 경우 상당한 아이러니와 냉소를 섞어서 그런 식의 은행 청산이 벌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보지 않았는가? …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그의 분석에 아주 중요한 열쇳말 하나가 빠져 있다는 점으로, 그것은 권력이다.”(cf. Capital as Power)

8. “자본주의의 금융 체제가 그와 같은 불안정하고 모순된 모습을 띠는 원인에 대해서, 금융가들의 탐욕과 규제 및 정책 입안자의 무지 및 근시안만이 지적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이를 지적하는 견해로 사회 여론을 계몽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자본주의의 금융 체제가 그러한 모습을 띠게 되는 필연성이 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권력’ 체제에 있는 것이라면? 과연 그러한 계몽의 노력이 이 앞에서도 효과를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이제부터의 상황 전개에 대한 설명력도 계속될 수 있을까?”

9. “비록 <유한계급론>의 저자로만 자꾸 왜소화되어 왔지만, 베블런의 진정한 주저라고 할 <영리 기업의 이론(The Theory of Business Enterprise)>의 7장에는 기업들의 ‘금전적(pecuniary) 자본 축적’의 논리가 어떻게 해서 일방적인 자산 시장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가 그리고 금융 체제의 유동성 공급이 어떻게 이것과 결합되며 그 결과 현실의 경기 변동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일관된 논리가 개진되어 있다. 베블런이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는 열쇳말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탐욕과 무지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독점하고 지배하려는 영리 기업 부문 전체의 ‘권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제시하는 해법도 단순히 건전하고 투명한 금융 체제의 재건이나 부실 기관의 청산과 같은 차원을 넘어서 금융 부문이 사회 전체에 대해 누리는 부당한 권력의 구조 자체를 개혁할 것을 지향하고 있다.”

* 탐욕과 권력을 연계한 것을 일컬어 “영향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