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버섯, 쟁쟁거림, 오래참으심
제1장 클래식 초보자를 위하여
1-1 어떤 음악을 클래식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나의 악기로 펼쳐지는 개성적인 선율 - 독주곡
앙상블의 조화로 만들어내는 최고의 음악 예술 - 실내악곡
독주와 관현악의 대립 또는 조화 - 협주곡
조화와 장대함의 대서사시 - 교향곡
다양한 음색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화려함의 극치 - 관현악곡
신이 내린 천상의 악기 - 성악
극적인 종합 예술의 비상 - 오페라
성스러움과 거룩함으로 신을 찬비하다 - 종교음악
시와 음악의 최상의 만남 - 예술 가곡
1-2 고대음악에서부터 현대까지
고대음악(기원전 ~ AD 3세기)
중세시대의 음악(AD 4 ~ 14세기)
르네상스 시대 음악(AD 15 ~ 16세기)
바로크 시대 음악(AD 16세기 후반 ~ 18세기 중반)
고전주의 시대 음악(AD 18세기 후반 ~ 19세기 초반)
낭만파 시대 음악(AD 19세기)
현대 음악(AD 19세기 말 ~ 현대)
제3장 클래식 매니아를 위하여
3-1 바로크 음악
비발디(Antonio Vivaldi)
바흐(Johann Sebastian Bach)
헨델(Georg Friedric Handel)
3-2 고전주의 음악
하이든(Joseph Franz Haydn)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3-3 낭만주의 음악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
멘델스존(J.L.Felix Mendelssohn)
쇼팽(Frederic Franccois Chopin)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리스트(Franz Liszt)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베르디(Giuseppe Verdi)
브루크너(Anton Josef Bruckner)
브람스(Johannes Brahms)
생상(Camille Saint-Sauens)
푸치니(Giacomo Puccini)
말러(Gustav Mahler)
3-4 민족주의 음악
무소르그스키(Modesst. Petrovich. Mussorgsky)
차이코프스키(Pyotr Tchaikovsky)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라흐마니노프(Sergei Rakhamaninov)
드보르작(Antonin Dvorak)
3-5 현대 음악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바르토크(Bela Bartok)
스트라빈스키(Igor Fedorovich Stracinsky)
쇼스타코비치(Dmitry Shostakovich)
1. “엥겔스는 사람들 속으로 뛰어 들어가 놀라울 정도로 깊이 있는 사회-문화 르포르타주를 만들어냈다. 빈민의 본질이 무엇이고, 프롤레타리아라고 하는 존재가 공장주의 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그럴듯한 사회이론을 늘어놓는 식이 아니었다. … 맨체스터로 가는 길에 엥겔스는 공산주의를 만나게 된다. 베를린이 강의실과 술집에서의 토론으로 점철된 정신의 도시였다면, 맨체스터는 물질의 도시였다. 딘스게이트와 그레이트 두시 스트리트를 걸으면서, 샐퍼드 빈민가와 옥스프드 로드 주변 슬럼을 드나들면서 엥겔스는 산업화된 영국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실들, 사실들, 사실들을 철저히 수집했고, 그 효과는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빅토리아 시대 맨체스터에 대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가운데 많은 부분이 사실은 엥겔스가 섬뜩한 필치로 남긴 기록이다. 겨우 24세의 나이에 쓴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는 20세기 들어서 산업화 시대 유럽 도시의 끔찍한 상황과 착취, 계급 갈등을 문학적으로 그려낸 소품으로 여겨지곤 한다. 엥겔스의 기여는 단순한 사실 제공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가 공산주의 이론의 선구적인 텍스트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했다. … 그는 산업화되는 맨체스터에서 인간들이 겪는 불의를 직접 목격하면서 베를린 시절의 단순한 추상적 지식을 넘어섰다. 24세의 엥겔스는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지성으로 청년 헤겔파의 소외 개념을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물질적 현실에 적용시켰으며, 이를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의 골조를 만들어냈다. … 그러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는 이후 30년 동안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관해 엥겔스가 쓴 마지막 작품이기도 했다.”
2. “대중 정치 운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자본론>이나 결국은 실패한 제1인터내셔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880년대에 엥겔스가 쓴 수많은 팸플릿과 선전물로 시작된다. 엥겔스가 고인이 된 동료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마르크스주의를 인류사에서 가장 설득력있고 강력한 정치철학 가운데 하나로 발전시킨 것이다. … 장군이라는 별명은 엥겔스의 군사적 통찰력 만이 아니라 육체적인 인내와 절제, 놀라운 자제력과 헌신, 전략적인 감각, 특히 자신과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태도를 한데 아우른 표현이었다. 세월이 가고 마르크스의 기력이 쇠하면서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엥겔스의 강철같은 의지와 헌신은 장군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더더욱 강해졌다.”
3. “아닌게 아니라 낭만주의적 애국주의는 청소년기 엥겔스에게 처음으로 지적 자극을 준 사조였다. 후일 엥겔스는 따분하고 기계론적인 마르크스주의자 -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계몽주의 사상의 환원주의적 파생물이라는 식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 라는 비난을 종종 받는다. 물론 매우 부당한 평가다. 엥겔스는 평생 이런 젊음 넘치는 문화적 애국주의를 저버린 적이 한번도 없다. 심지어 프롤레타리아 국제연대를 주창하고 조국에서 추방당했을 때도 지그프리트와 그가 대변하는 영웅적 운명의 세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 친구가 묻힌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묘석을 세우거나 가족 묘지를 꾸미지도 않았고, 공식 행사도 없었다. 모순으로 가득하지만 매혹적인 삶을 살았고, 평생을 무한한 희생으로 일관한 인간 엥겔스는 그렇게 갔다.”
* 선생님께서 ‘엥겔스’로 돌아오셨다. 감사하다.
“수건 깃발은 모래바람이 불 때 집을 제대로 찾으려면 꼭 필요한 길잡이요 나침반이었다. … 깃발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위기 상황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그녀 곁에는 바이완샹이 있었고, 지금은 늙었지만 그때는 한없이 영민하던 노새도 든든한 동행으로 그녀의 길을 지켜 화를 면했다. 돌아보면 얼마나 아득한 길이었는지…. 모래 언덕의 능선과 비탈 중 그녀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이 없고, 그 발자국마다 짜디짠 눈물과 깊은 한숨이 배어 있다. 얼마나 많은 나무의 목을 바람이 분질러 놓았는지, 얼마나 많은 묘목을 모래가 삼켜 버렸는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징베이탕의 모래 언덕은 오늘날 거대한 숲이 되었다. 어느 해 봄에는 어린 나무의 무덤이 되고만 땅에서 놀랍게도 싹이 돋았다. 모래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던 생장점 하나가 기사회생한 것이었다.”(178쪽)
“중국의 메마른 사막을 숲으로 만든 여자가 있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떠난 사막에 홀로 남은 바이완샹이라는 청년. 영문도 모른 채 이 청년에게 시집와야만 했던 인위쩐. 모래바람을 맞으며 일주일을 울던 그녀의 첫마디는 ‘여기에 꽃을 심으면 안 될까요?’였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다. 계속된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의지가 1400만평의 사막을 푸른 숲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아무런 논리적 연관도 없는 두 가지 사실을 연결시키는 엉뚱한 태도를 가리키는, ‘코기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라는 글에서 에코는 … 모든 텍스트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학문적인 생산은 물론 일상적인 의사소통까지도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하였다(강유원, 2004).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베르그송과 토론하듯이, 플라톤이 흄과 논쟁을 벌이듯이,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철학사를 공부합니다.”(Borges, 1977[2004])
“브뤼겔(Breughel)의 회화작품과 칼로(Callot)의 동판화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듯이 군인은 중세 및 르네상스기 유럽에서는 증오의 대상이자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먹고 마셨을 뿐만 아니라 장교들조차 통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성 상납을 포함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차지했으며, 저항하면 고문하고 살인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망나니들이었다. … 왜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곳에서 군인들이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일까? 물론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고, 대개는 사회의 최하층 출신이었기 때문에 멸시를 받았다. 그들은 성실하게 살 수 없는 사람이거나, 부양할 수 없는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거나, 도둑질 또는 강도질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직의 범위 바깥에 내던진 자들이었다. 입대는 그들에게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했다. …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조차 사병들은 사회적 추방자였다. 허가 없이 결혼할 수도 없었고 결혼을 한다 해도 수입이 너무 적어서 아내를 부양할 수도 없었던 그들은 남부끄럽지 않은 신분에 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육군 원수가 되는 윌리엄 로버트슨(William Robertson)의 어머니는, 그가 군인이 되기 위해 공무원직을 그만두었을 때, ‘네가 군이 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보겠다’고 썼다(John Keegon, 1998: 105~108).”
1. “알튀세르를 비롯한 프랑스 포스트모던 사상을 일본에 소개한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사상 연구가인 이마무라 히토시(今村仁司)가 쓴 『貨幣とは何だろうか』”는 “화폐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 화폐의 사회철학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 히토시는 짐멜의 『화폐의 철학』부터 괴테의 『친화력』,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 루소의 『언어 기원론에 관한 시론』까지 망라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철학적 의미의 화폐란 인간 관계에서 폭력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매개 형식이다.”
2. “주요 논의 틀인 ‘관계의 매개 형식’은 짐멜의 화폐 철학을 계승한 것이다. … 히토시는 짐멜의 입장을 바탕으로 화폐의 존재를 인간의 실존과 비교해서 봐야 한다고 말하며, 인간 고유의 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 관념에 주목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개념을 갖고 있지만 죽음이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이상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나의 죽음처럼 느끼지 않기 위해 타자화하고 거리화한다. 히토시는 마르셀 모스가 마오리족의 증여 행위를 분석한 글을 인용하면서, 증여 행위가 인간 관계에 생과 사의 단절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남기는 증여물은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동시에 증여라는 매개 형식으로써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증여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 형식을 띠게 되었고, 그렇기에 화폐의 뿌리는 본래 죽음의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3. “화폐라는 매개 형식의 존재 방식과 인간 존재의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해 히토시는 괴테의 『친화력』과 지드의 『위폐범들』을 ‘화폐 소설’로 규정하여 논한다. 화폐 소설이란 … 관계의 안정과 질서 또는 도덕과 규칙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매개 형식’을 주제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친화력』과 『위폐범들』을 ‘매개자’에 관한 소설, 즉 화폐 소설로 보는 것이다. … 화폐와 같은 매개 형식은 각자의 욕망이 그대로 맞부딪칠 수 있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과 인간의 충돌, 인간과 자연(신)의 충돌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 소설에서는 관계의 매개 형식이나 그러한 매개 역할을 하는 인물, 소재 등이 부재할 때 발생하는 갈등이 이야기의 큰 줄기가 된다. 『친화력』에 등장하는 ‘무덤 파괴’ 이야기나 『위폐범들』에 나오는 몇몇 죄 없는 인물들의 죽음은 규칙이나 관습 같은 제도화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충돌 상태를 그린 것이다.”
4. “히토시는 화폐와 문자의 유사성을 고찰하기 위해 루소와 데리다를 인용한다. … 어떤 존재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닐 수 없고 무언가를 매개함으로써만 의미를 지닌다는 데서 화폐와 문자는 공통점을 갖는다. 자연 상태의 인간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 루소에게 아름답고 청결한 존재성은 윤리성으로 연결되고 불투명함은 오염, 불순, 죽음과 연결된다.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에서 투명성과 직접성을 유지하려면 중간자와 매개자는 추방되어야 한다. 루소가 장애물이나 중간자를 혐오한 것은 이 때문이다.”
5. 히토시는 “마르크시즘의 화폐 폐기론을 국가사회주의와 조심스럽게 연결시키며, 화폐(자본)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펼친 마르크스의 이론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화폐를 단순히 경제결정론의 차원에서만 바라봤다는 점에 아쉬움을 피력한다. 화폐의 폐기는 경제학적인 차원에서는 이상적일 수 있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에 결부해 생각해볼 때 하나의 매개 형식이 폐기된다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으며 그것은 중국 혁명이나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이미 증명되었다. … 형식으로서 화폐는 매개자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 언어, 문화 등 인간 일반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며, 인간 관계에 내재하는 폭력의 제도적 회피 장치라는 완충 역할을 한다. …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 화폐는 반드시 발생하고 존속한다. 만약 화폐를 폐기한다면 인간은 곧 스스로가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히토시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를 전거로 ”증여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 형식을 띠게 되었고, 그렇기에 화폐의 뿌리는 본래 죽음의 관념”이라 주장한다. 우활한 소리다.
1. “당시에는 미처 자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부터 분신정국이 펼쳐졌던 1991년까지 사 년에 걸쳐, 그동안의 한국사회를 완강하게 지탱해온 뭔가에 불길이 지펴지면서 그 불꽃이 화려하게 타올랐다가 장엄한 모습 그대로 몰락해갔다. 그게 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 그리하여 그들이 목도하게 된 것은 일찍이 황지우가 시 <이준태(1946년 서울生, 연세대 철학과 졸, 미국 시카고 주립대학 졸)의 근황>에서 쓴 것과 같이 “그리고 大腦와 性器 사이”의 세계였다. 대뇌와 성기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대뇌는 대뇌끼리, 성기는 성기끼리 서로 피곤할 정도로 싸우던 시절은 끝이 났다. “그리고 대뇌와 성기 사이”의 세계에서는 개인들이 저마다 한 시대의 몰락을 주관화하고 내면화시키면서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곧 한 시대의 상처가 각 개인의 내면, 그러니까 대뇌와 성기 사이에서 치유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그 시점부터 대뇌의 언어와 성기의 언어가 혼재하기 시작하다가 한동안은 성기의 언어만이 사회를 휩쓸었다. 이 사실은 1992년부터 라캉 유의 정신분석학이나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과 베르나르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따위의 영화가 크게 유행한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마광수 교수가 1991년 발표한 <즐거운 사라>로 구속된 것도,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라고 노래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것도 바로 1992년의 일이었다. 1991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1992년부터 모두 성기의 언어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1991년 5월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내면 풍경이었다.”
2. “하루키와 문단의 애증관계는 문제적이다. … 첫 번째 논란은 1992년의 표절 논란이다. 당시 연속으로 나온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1992년 3월),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1992년 6월), 주인석의 <희극적인, 너무나 희극적인>(1992년 7월),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1992년 8월) 등이 논란을 점화했다. 장정일은 같은 해 <문학정신> 7·8호 합본호에 ‘표절의 세 가지 층위에 관해서’라는 글을 발표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하루키를 표절한 ‘무뇌아적 해프닝’이라고 주장했고, 박일문은 이에 맞대응해 장정일과 <문학정신> 발행인을 고소하기도 했다. 장정일은 자신의 이런 경험을 녹여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3년)를 썼다. … 오늘의 문학상(<살아남은 자의 슬픔>), 작가세계 문학상(<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등 문학상을 휩쓴 작품들, 그리고 ‘젊은’ 작가의 작품들이 한꺼번에 ‘하루키를 닮았다’란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해당 소설들은 ‘신세대 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1990년대 신세대들은 새롭게 등장한 작품들에 열광했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40만 부가 팔렸다. 시인 장석주는 “1989년 처음 하루키를 봤을 때 얼리어답터들은 정말 새롭다,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우리 문학 역시 이 방향으로 갈 것이다, 거대담론이 소멸하고 일상·자아·욕망·사랑·성을 다루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델이 하루키가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구효서, 윤대녕, 장정일 등 새롭게 등장한 소설들이 실제로 그러했다. <상실의 시대>가 회고하는 상황이 한국과 흡사했다. 우리 작가들이 그런 대중 의식의 변화, 정서의 변화를 선점당했다.” 작가들은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 만한 작품은 이미 완벽한 형태로 나와 있었다. … 그런데 묘한 것은 젊은 작가들이 하루키를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2006년 9월 <교수신문>에서 실시한 30대 문인 설문조사(평론가 30명, 소설가 30명, 시인 35명)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해외 작가로 하루키가 지목되기도 했다(19명).”(구둘래, 한겨레 772호[2009.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