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투쟁의 과열로 인정 중독이 만연한 시대, 내면의 성정 고찰 절실
“군주제는 1792년 9월 21일 국민공회에 의해 폐지됐으며, 그 결과 프랑스 제1공화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정권을 잡은 국민공회는 그레고리우스력 - 이것은 로마 교황이 만든 관습으로 간주되었습니다 - 을 폐지하고 추분이 인류의 평등을 상징한다고 여겨 이 날로 시작하는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십진법을 기준으로 한 이 프랑스혁명력은 한 달을 30일로 정하고 1년마다 남는 닷새를 연말에 배치해 축제 기간으로 정했습니다. 각 달의 이름은 계절의 특징을 따라 지었는데 브뤼메르Brumaire는 안개, 테르미도르Thermidor는 열, 즉 태양의 계절을 의미합니다.”
“‘혁명의 10년은 1789년 5월 삼부회 소집부터 1799년 11월 9일(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의 군사 쿠데타까지를 말합니다. … 삼부회는 귀족(제1계급), 성직자(제2계급), 평민(제3계급)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혁명의 10년’은 1794년 7월 27일(테르미도르 9일)을 기준으로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792년 8월 10일 파리에서 일어난 튈르리 궁전 습격부터 로베스피에르(1758~1794)가 처형당한 이 날까지를 ‘혁명력 2년’이라고 부릅니다. 로베스피에르의 처형은 프랑스혁명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므로, ‘혁명력 2년의 로베스피에르’는 급진적인 혁명 지도자가 이끄는 중대한 혁명적 시도가 급격하게 좌절된 사건을 가리킬 경우에 쓸 수 있습니다. ‘혁명력 2년’은 산악파(자코뱅 파)와 상퀼로트(과격 공화파)가 결합하여 근대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인 인민 중심의 통치가 이루어진 시기였고 그것을 이끈 핵심 인물이 로베스피에르였습니다. 1794년을 기준으로 전반부 5년 동안 입헌군주정, 온건 공화정, 민중 공화정 순으로 체제가 세 번 바뀌었고, 후반부 5년 동안에도 보수 공화정과 제정으로 두 번 바뀌었습니다.”
“프랑스혁명하면 떠오르는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는 모두 제3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3계급은 혁명의 와중에 분열했고, 제1공화정(민중 공화정)은 자코뱅 파 안의 한 분파인 산악파와 제4계급이 결합해서 성립했습니다. 이전 체제인 온건 공화정이 자유주의 혁명 단계였다면 민중 공화정은 사회민주주의적인 전망을 열었습니다. 제4계급은 흔히 상퀼로트Sans-culotte로 불렸는데, 이 말은 ‘퀼로트를 입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돈 있는 사람은 퀼로트(짧은 바지), 돈 없는 사람은 긴 바지를 입었던 것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18세기 후반에 프랑스 인구는 2천600만이었고 잉글랜드 인구는 900만이었습니다. 과학이 더 발전한 나라도 프랑스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보다 잉글랜드에서 먼저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했습니다. 자유로운 노동자의 공급이 잉글랜드에서 먼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노동자가 생겨나려면 잉글랜드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먼저 농업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 이 과정은 농민을 땅으로부터 떼어 내 부랑자로 만든 다음, 도시로 몰아넣는 폭력적인 과정입니다. … 18세기 잉글랜드에서 살던 지주는 4천 명, 차지농은 24만 명, 농업 노동자는 125만 명이었는데, 여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농촌을 떠돌다가 도시의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316~317)
1. “과학기술에 관련된 지식은 원리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원리적 지식의 기준은 참과 거짓이고 절차적 지식의 기준은 성공과 실패입니다. 과학자는 참과 거짓을 따지고 공학자는 성공과 실패를 따집니다. 이 두 지식이 결합하여 과학-기술 지식이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과학-기술 지식은 사회에 투여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계속 순환하고, 그 결과 ‘개량’이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중국인은 화약과 화포를 발명했지만 그것을 전해 받아서 개량을 하고 무거운 대포를 만들어 범선에 실은 사람은 유럽인이었습니다. 왜 중국인은 그것을 개량하지 못했을까요?”(282)
2.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술적 지원과 풍부한 원자재, 중국인들 자신의 재주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만족스러운 수준의 대포를 생산하지 못한 요인은 한두 마디로 요약하기 힘들다. 중국이 왜 우수한 대포를 만들어내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은 중국이 왜 산업화하지 못했느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과 문화적 자부심, 제도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_ 카를로 치폴라 <대포, 범선, 제국>, 140쪽.
3. “카를로 치폴라의 말대로 사회적 신념 체계와 관습의 광범위한 변화가 없었다면 과학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조선시대 말 개항을 전후로 형성된 서양 문명에 대한 수용 논리, 즉 동도서기東道西器와 같은 시도는 불가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을 아무론 접합제 없이 결합시킬 수는 없습니다. 정신적인 것들은 물론 사회적인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기술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함께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 원리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의 결합, 사회적 신념 체계와 관습의 광범위한 변화를 통해 과학은 새로운 시대정신의 강력한 저변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서구 세계 전체로 확신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계몽주의입니다.”(283)
“지난 4월부터 추진되어온 메가스터디 매각이 무산됐다. 업계는 인수후보를 찾지 못한 데 원인을 지목했다. … 이번 매각 불발의 배경에 대해 M&A업계는 국내 사교육업계의 전망이 악화된 상황에서 전략적 투자자(SI)를 구하지 못한 때문으로 내다보고 있다.” “EBS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교육시장이 메가스터디에 악재로 작용하며, 수시 비중이 60%를 넘던 2011년부터 메가스터디 실적이 추락했다. 2011년 835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2년 592억원으로 곤두박질친 후 2013년에도 502억원으로 하향곡선이다. 주가 역시 24만원 대에서 2013년 7만원 대까지 미끄러지다 현재는 5만9000원으로 더 떨어진 상태.”(2014. 6. 20.)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가 2015학년 신입생 선발 2단계 전형결과를 발표했다. … 지난 5월18일 실시된 수학/과학 창의적 문제해결력 검사에 1단계 합격자 1000명 내외 중 772명이 응시했다. 학생기록물과 수학/과학 분야의 창의적 문제해결력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선선발 대상자 40명을 포함, 200명을 선발했다. … 2단계 합격자 200명의 출신 지역을 살펴보면 서울지역이 72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경기 50명, 부산 28명, 인천 13명, 대구 11명, 대전 4명, 경남 경북 충남 충북 각 3명, 강원 광주 울산 전남 각 2명, 전북 제주 각 1명 순이었다. 세종시에서는 2단계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으며, 검정고시출신과 유학생 가운데서도 2단계 합격자가 없었다.”
* 서울 132 + 경기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