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estas is a Latin word meaning power or faculty. It is an important concept in Roman Law. The idea of potestas originally referred to the power, through coercion, of a Roman magistrate to promulgate edicts, give action to litigants, etc.
Potestas is a Latin word meaning power or faculty. It is an important concept in Roman Law. The idea of potestas originally referred to the power, through coercion, of a Roman magistrate to promulgate edicts, give action to litigants, etc.
Hebrews 12:14-15, 28-29 ESV
Strive for peace with everyone, and for the holiness without which no one will see the Lord. See to it that no one fails to obtain the grace of God; that no “root of bitterness” springs up and causes trouble, and by it many become defiled; Therefore let us be grateful for receiving a kingdom that cannot be shaken, and thus let us offer to God acceptable worship, with reverence and awe, for our God is a consuming fire.
“화산처럼 격렬한 분노를 품고 있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그 광야에서 우리는 물러남과 보냄의 원리를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미미해지고, 숨겨지고, 무력해져야 한다.”
“오로지 그리스도교적 실천만이, 즉 십자가에서 죽은 그가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만이 그리스도교적이다. … 오늘날에도 그런 삶은 가능하며, 특정인들을 위해서는 필요하기까지 하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근원적인 그리스도교는 어느 시대에나 가능할 것이다. … 신앙이 아니라 행동이, 무엇보다도 많은-것을-행하지-않음, 다른 식의 존재가 말이다.”(AC 39 : KGW VI 3, 209)
“니체는 예수를, 원한 감정을 넘어선 자유와 초탈의 복음, 복음주의적 평등, 사랑하는 삶이라는 복음, 복음의 실천을 통한 내면의 구원을 설교하는 존재이자 이런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존재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런 예수의 복음만이 진정한 기쁜 소식이며, 이런 예수가 진정한 구세주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예수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교성을 제시하는 존재이며, 역사상 유일했던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이런 예수상이 교회와 사제 집단에 의해 전혀 다른 구세주 유형으로 왜곡된다. 복음적 평등 권리 대신에 단 하나의 신과 단 하나의 신의 아들이라는 것, 사랑을 통한 구원 대신에 신앙을 통한 구원, 불멸에 대한 믿음, 부활과 심판에 대한 종말론적 교리 등이 구세주 유형에 도입된다. 더군다나 교회라는 것은 예수가 진정 원치 않았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창시자인 예수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교성은 상실되어버리고, 신의 죽음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교성의 상실에 기인한 것이다. 니체는 이런 사건의 주모자로 사제 집단을 지목한다. 사제 집단이 권력 추구 성향으로 인해 구세주 유형을 왜곡하고 교회라는 조직을 건설한 것이다. 사제들은 그들 자신이 가치를 설정하는 권력의 주체이고자 한다. 따라서 신에 대한 복종을 권고하면서 사실은 자신들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 <안티크리스트>에서 비로소 표명된 이런 입장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미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_ 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책세상, 2005, 269~270쪽.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_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민음사, 2003, 31쪽.
자긍심의 기둥이 무너져 내리자 헐벗은 내면을 목도할 수 있었다. 무시하며 만족시켜 우월을 추구하던 그것, 진저리 치며 기력이 쇠해 빛으로 도피하던 그것.
“그것(Ça)은 작동하고 있다. 때로는 흐르며, 때로는 멈추면서, 도처에서 그것은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호흡을 하고, 그것은 열을 내고, 그것은 먹는다. 그것은 똥을 싸고, 그것은 섹스를 한다. 그럼에도 한데 싸잡아 그것(le ça)이라 불렀으니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도처에서 이것은 여러 기계들이다. 게다가 결코 은유가 아니다. 이것들은 서로 연결하고, 접속하여 기계의 기계가 되는 것이다.”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 중순에 들면 중동지(中冬至),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 애동지는 팥죽을 먹지 않는다. 애동지 땐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팥죽을 해먹지 않고 떡을 해먹는 풍속이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나는 이것을 자발적인 하향 평준화라 부르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매체 형평성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싸한 표현이다. 또한 그래서 나쁜 표현이다. 매체 형평성이란 신생 매체라고 접근에 차별당하거나 정치적 성향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걸 막을 때나 필요한 개념이지, 매체들이 게으름의 카르텔을 정당화하기 위해 쓸 표현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