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16

December 22, 2016: 10:03 pm: bluemosesErudition

비평은 얄궂은 훈수가 아니다. 그것의 존재율은 - 간과하여, 하마터면 잃을 수도 있는 - 미덕의 상찬이다.

: 2:00 pm: bluemosesErudition

“‘발칸’은 본래 산맥 이름으로, 고전 교육을 받은 서양인들에게는 중부유럽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갈 때 거쳐야 하는 고대의 헤무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이 무렵에는 이미 몇몇 지리학자가 피레네산맥이 이베리아 반도의 산마루에서 북남 경계를 이루어 주듯, 발칸산맥도 유럽 남동부 반도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착각해, 발칸을 그 지역 전체를 통칭하는 말로 확대 사용하기 시작했다.”(16)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 ─ 이 전쟁으로 유럽에서 오스만 지배는 끝났다 ─ 이 일어날 무렵 발칸이라는 용어는 이제 통용어가 되기에 이르렀다. … 1917년 동방문제를 다룬 역사책에는 이제 “이전 세기의 지리학자들이 ‘유럽의 터키’라 부른 지역이, 그 동안에 일어난 정치적 변화로 새로운 이름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 지역도 ‘발칸 반도’나 혹은 간단히 ‘발칸’이라 불리게 되었다”라는 내용이 실려있다.”(19)

“발칸의 도시들은 으레 동방적 실체는 뒤에 숨기고 겉모습만 유럽풍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것은 가령 철로는 유럽식이지만 마차로는 유럽식이 아니라는 것, 기술은 유럽식이지만 예배의식은 유럽식이 아니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회구조는 거의 언제나 외양은 현대적이고 내용은 전통적인 것으로 분리돼 있다.”(29)

“전체적으로 볼 때 발칸 산맥 동쪽의 연평균 강수량은 산맥 너머 서쪽의 연평균 강수량보다 10인치에서 20인치 정도가 낮고, 그 때문에 가장 비옥하다는 평원도 연례행사처럼 매년 가뭄을 겪는다.”(44)

“발칸의 마을들은 수세기 동안 주요한 정치, 행정, 재정, 군사적 단위로 농촌 주민들의 집단적 삶을 구성해왔다. 발칸인들에게 ‘조국’은 곧 ‘마을’이었으며, 마을의 대표는 국가의 고위 인사나 타인들 앞에서 주민을 대신해 발언하는 대변자였다. 하지만 이 같은 고립된 집단성은 19세기 무렵부터 주민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방식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81)

“오스만 유럽에서는 인구의 태반 ─ 80퍼센트는 될 것이다 ─ 이 기독교도로 남아 있었다. 심지어 이슬람이 침투한 농촌 지역에서조차 투르크어는 힘을 쓰지 못했다. 보스니아 무슬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모국어인 슬라브어를 썼고, 무슬림인 잔니나의 알리 파샤도 투르크어가 아닌 알바니아와 그리스어를 썼다. 크레타의 무슬림 농민들은 그리스어를 쓰면서, 그들 대부분의 조상인 기독교인들만큼이나 크레타의 서사시 에로토크리토스를 즐겨 읽었다. 에디르네 일대 투르크족 중심지를 벗어난 외곽지역에서는 투르크어가 도심에서만 쓰는 행정 언어로 역할이 축소되었다. 보스나 세라예(사라예보), 스코페, 소피아 같은 도시들은 거의가 이슬람 일색이었고, 기독교 해역에 속하는 오스만 지배하에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섬들도 독일어를 쓰는 도시들만큼이나, 슬라브어 사용 지역인 동유럽에서 제 역할을 다했다.”(101)

“어떤 종교를 믿느냐를 질문에 마케도니아의 농부들은 성호를 그으며 “우리는 성모마리아를 믿는 무슬림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116)

“개종하면 으레 배교, 실존적 고뇌, 개인, 국가적 배신을 떠올리기 마련인 우리와 달리, 오스만제국의 많은 사람은 ‘진정한 신앙’을 위해 ‘이교도 종교’의 ‘무지한 세계’를 떠나는 것을 크게 중요시하거나 갑작스러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으로는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이동하는 것이 한 종교를 포기하고 다른 종교에 빠져드는 행위라기보다는, 구종교에 새로운 종교를 하나 덧붙이는 행위로 보였다.”(123)

“발칸 지역의 국가 건설은 19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그것은 장기간에 걸친 지루한 실험이어서 발칸의 여러 ‘힘없는 민족들’은 이 기간에도 여전히 오스만제국의 신민으로 남아있거나 ─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그 밖의 다른 민족들처럼 ─ 합스부르크제국의 신민으로 남아있었다.”(164)

“1878년이 발칸에 대한 열강의 지배가 최고조에 오른 시기였다면 이후 30년간은 발칸에 대한 열강의 지배가 와해된 기간이었다.”(167)

“러시아는 1905년 일본에 패한 뒤에야 남동부유럽에 다시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의 긴장관계는 더욱 높아졌다.”(168)

“세르비아와 보스니아에서는 합스부르크제국의 통치에 반대하는 비밀 결사 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결사 조직들 중 “단결 아니면 죽음”이라는 비밀조직이 1914년 사라예보 암살 사건과 연루돼 있었다.”(174)

“1921년에서 1922년까지 그리스와 전쟁을 벌이는 동안 투르크는 아타튀르크로 더 유명한 무스타파 케말 주도하에 터키 공화국을 탄생시킨다. … 1923년 그리스와 터키의 강제 주민교환 ─ 이 조치로 무슬림들은 그리스를 떠나 터키로 향했고, 아타톨리아의 정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로 ‘돌아갔다’ ─ 으로 양국의 인종 구성은 더욱 동질화되었다.”(183)

“1923년까지는 동방문제가 일단락되었다. 10여 년에 걸친 전쟁으로, 수세기 동안 발칸과 동부유럽 대부분을 지배한 제국들은 마침내 와해되었다. 하지만 제국들이 붕괴해도 서방 진보주의자들이 예상한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계승 국가들이 민족성 원칙을 내세우며 이웃국가들의 영토를 서로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185)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오고 있었으며 민족주의는 이 둘 다에 걸쳐 있었다.”(186)

* 164~174쪽 사이의 해소되지 않은 의문 _ 극단적 분파주의 부상 원인

: 1:34 am: bluemosesErudition

“통렬한 반성은 있었지만 청사진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지금처럼 학부생들 위주로 고만고만한 스마트폰 앱이나 만드는 ‘치킨집식 창업’에 매달리다간 조선·철강산업처럼 우리나라 대학도 함께 침몰할 것이다.”

: 12:40 am: bluemosesErudition

초원의 왕 도제 _ 티베트 배경 중·일 합작 애니메이션

December 20, 2016: 10:45 pm: bluemosesErudition

“지정학(geopolitics)은 지리적 요인들을 통해 국제적 현안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산맥 같은 천연의 장애물이나 하천망의 연결 같은 물리적 지형뿐 아니라 기후, 인구 통계, 문화 지역, 그리고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성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정치, 군사 전략부터 시작해서 언어, 교역, 종교 등을 포괄하는 인류의 사회적 발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명의 여러 국면에 중대한 충격을 가할 수도 있다.”(9)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10)

“1803년, 미합중국은 프랑스로부터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 지역 전체의 지배권을 사들였다. 이 지역은 멕시코 만에서 시작해서 북서쪽으로 로키 산맥의 미시시피 강 지류들의 상류까지 뻗어 있다. 이 땅의 면적은 오늘날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그리고 통일 독일을 합친 넓이와 맞먹는다. 신생 미합중국은 이 땅을 흐르는 미시시피 강의 유역을 기반으로 번영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1천5백만 달러짜리 서명 하나로 1803년에 미국은 루이지애나를 구입하여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63)

“대다수 미국인들은 1819년 [스페인에서] 플로리다를 얻은 것을 가장 큰 승리로 여겼지만 당시 국무장관인 존 퀸시 애덤스는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결정적으로 태평양 방향의 경계선을 획득한 것이 우리 역사에 위대한 시대를 열게 한다.”"(65)

“텍사스는 1845년 미합중국에 귀속되었고 1846년부터 2년간 벌어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는 미국과 힘을 합쳐 싸웠다.”(67)

“분석가들이 지난 10년에 대해 쓴 것을 보면 대다수가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며 세계의 최대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1장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살펴본 이유로 인해 나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1세기는 걸릴 거라고 본다. … 경제로만 보면 중국은 미국에 견줄 만큼 성장했지만 군사력과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에 수십 년은 뒤처져 있다.”(76)

: 4:15 pm: bluemosesErudition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지역이나 공간의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삶을 지배하는 정신과 방향성을 의미하며 완성된 ‘왕국’(Kingdom)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삶의 양식’(Lifestyle)이다. 그것은 권력이나 폭력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지배하는 삶과 세계를 뜻한다.”

: 3:46 pm: bluemosesErudition

A History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 3:36 pm: bluemosesErudition

Alister McGrath, T. F. Torrance: An Intellectual Biography(T&T Clark, 1999), reviewed.

: 11:59 am: bluemosesErudition

“토렌스의 생애 중 한 시기가 그에게 특별히 중요했는데,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처음에는 중동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탈리아에서 스코틀랜드 부대의 군목으로 일한 몇 년이었다. 그가 특별히 기억하는 부분은, 치명상을 입고 전장에 쓰러져 있던 한 젊은 군인이 그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토렌스가 할 수 있는 한 그를 도우려고 애쓰는 동안, 그는 토렌스에게 “하나님이 정말로 예수님과 같습니까?”라고 물었다. 토렌스는 그에게 그렇다고 확신시켜 주었고, 그 젊은이는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토렌스는 이 사건이 나사렛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해주었다고 했다.(92~93) 하나님은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라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분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를 통해 만나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그래서 토렌스의 통찰이 그토록 중요하다.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통해 보는, 사랑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 낸 환상도 아니고 누구가가 우리에게 부과한 속임수도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알려지도록 하나님을 온전히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성취이시다.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예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구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 바르트 <교회교의학> 영역자이자 맥그래스 <과학적 신학>의 선구자, 토머스 토렌스(1913~2007)

: 11:57 am: bluemosesErudition

“젊은 시절 내가 기독교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이 죽는 몸과 죽지 않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상이었다. 나는 몸이 영혼의 집 같은 것이고, 일단 죽으면 영혼은 천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혹은 왜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실제도 신조에는 그런 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되었을 때는 비물질적이고 영원하며, 잠시 인간의 육체에 죽을 때까지만 머물다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영혼을 믿을 이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스콜라 학파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영혼 불멸설을 믿었다. 중세에는 ‘몸’과 ‘영혼’을 구분했다. 그리고 인간이 다른 동물이나 무생물과 다른 이유는 ‘영혼’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이해는 성경을 근거로 정당화되었는데, 신약성경이 일반적으로 ‘육체와 영혼’에 대해 말하고, 간혹 ‘몸, 혼, 영’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퀴나스 같은 중세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몸’을 인간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부분을 일컫는 것이라고 이해했고, ‘영혼’은 인간의 육체 안에 단지 기거할 뿐인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영적인 실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성경의 진술들을 정말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가? 20세기의 많은 학자가 비물질적인 영혼의 개념은 성경적이기보다 세속 그리스적 사상이라고 지적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간에 대한 관점은 하나의 실체, 즉 여러 가지 양상이 있으나 분리는 할 수 없는 ‘정신-육체의 통일체’다. 구약성경은 인간을 “육화된 영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으로 보았다(H. Wheeler Robinson). ‘영혼’은 다양한 성경의 용어들을 번역하는 데 사용되는 앵글로-색슨 단어인데, 그렇게 번역이 되는 성경의 용어들은 대체로 ‘생명의 기초’ 혹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경은 인간의 어떤 부분을 일컫는 데는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인간 존재의 양상으로 이해한다. 신약성경의 경우도 비슷하다. 바울이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롬 8:4)이라고 한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서로 다른 부분인 육체와 영혼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과 하나님과 연결되는 삶을 사는 것의 차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의 양상으로 생각하거나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능력이 우리에게 참 정체성을 부여해 주고, 그 정체성을 유지해 준다.”

_ 그릇된 체계로 조야한 사유를 얼마나 그윽히 하는가. 신념에 신조를 맞추는 우활한 소리를 얼마나 충실히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