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의 연극 선생님이었던 브리짓 트로노는 특히 마크롱의 비범함을 높이 샀습니다. 지난해 한 다큐멘터리에서 트로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크롱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어요. 10대 청소년의 감수성이 아니었죠. 이미 다른 어른들과 말도 잘 통했고, 동등한 관계를 맺었어요.” 하루는 마크롱이 선생님과 함께 마지막 연극 수업 때 무대에 올릴 극의 대본을 쓰고 싶다며 계획을 짜 왔습니다. 트로노는 마크롱이 이내 지루해지겠지 생각했습니다.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될 줄 알았죠. 그런데 같이 대본을 쓰는데, 마크롱은 정말 조금씩 깨우쳐가며 끝없이 나아지고 끝내 일을 다 해내더라고요. 정말 똑똑한 친구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죠.” 선생님이었던 트로노와 결혼하겠다고 맹세하고 마크롱은 16살에 공부를 마치러 아미엥을 떠나 파리로 갔습니다. 트로노는 이 시절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매일 몇 시간씩 통화했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 결혼은 말도 안 된다던 제 반대가 누그러졌어요. 마크롱이 정말 끈질기게, 그렇지만 아주 훌륭하게 저를 설득해냈죠.” 브리짓 트로노는 마크롱보다 24살이 많습니다. 당시 결혼해 아이 셋을 둔 엄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트로노는 남편과 이혼하고 학생이었던 마크롱과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2007년에 결혼합니다.
“마크롱은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는 끝없이 투쟁하며 살아왔다, 쉬운 것도, 분명한 것도, 알아서 척척 되는 것도 전혀 없었다고요. 무언가를 할 때 정해진 길이 있어서 그것만 따라갔던 적은 한 번도 없고, 항상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워가며 얻어냈다고요.”
“제 할아버지, 할머니 네 분은 선생님, 철도 노동자, 사회복지사, 교량 건축 기사셨어요. 저는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 출신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제가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던 건 교육 덕분이었습니다. 갈림길에 설 때마다 저는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제가 노동자와 서민, 중산층의 후보라고 누구보다 떳떳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마크롱이 실패를 추스르는 데 미숙하다는 점은 마크롱을 지지하는 이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약점입니다. 마크롱은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뼈아픈 실패나 큰 좌절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랑제꼴 중에도 최고로 꼽히는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에 떨어졌다지만, 그러고 나서 국립행정학교에 갔기에 이를 실패라고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마르슈는 그랑드 마르슈(Grande Marche, 가가호호 방문하며 유권자를 만난 앙마르슈의 대국민 인터뷰)를 통해 유권자 2만5천 명의 상세한 견해를 담아냈습니다. 앙마르슈의 자원봉사자들이 프랑스 유권자를 만날 때 꼭 하는 질문이 두 가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건 무엇이고, 반대로 잘 안 되고 있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입니다. 흥미로운 모순점도 드러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학교는 대체로 원만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답했는데, 동시에 무엇이 잘 안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또 많은 사람이 국가 교육 제도를 꼽았어요. 일선 학교와 교육 제도를 유권자들이 다르게 인식하고 있던 것이죠. 이렇게 미묘한 사안임을 생각하면 해결책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죠.”
_ ENA 출신의 1977년생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2017.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