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물결플러스에서 2017년 4월 27일 출간한 정용섭의 <목사 공부> 일부를 옮겨 적는다.
(183) 동서양 철학자들의 연대기를 뚫어보고, 그들의 생각을 다른 이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그가 철학의 세계로 들어갔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목사가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내용을 샅샅이 연구했다고 해서 성서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보장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철학적 사유다.
(184) 목사들의 하나님 경험도 차원이 다 다르다. 수박을 먹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남의 이야기만 듣고 수박 맛을 전하려는 것처럼 목사도 하나님 경험이 없이 하나님을 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의 말이 공허한데도 불구하고 상당한 회중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회중도 수박을 맛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러니 누구든지 표면으로나마 진정성을 갖춘 포즈를 취한 채 큰소리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잠시는 회중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길게 갈 수는 없다. 수박을 직접 먹어보는 경험이 신학의 경우에는 철학 공부로 주어진다. 철학 공부가 없는 경우에 목사는 신학 공부를 통해서 기껏해야 교리 선생이, 즉 세례 공부를 이끌어가는 수준의 선생이 될 수 있을 뿐이다.
(184-185) 판넨베르크는 뮌헨 대학교 개신교 신학부에서 1993/94년 겨울 학기를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십수 년에 걸쳐 Theologie und Philosophie라는 과목을 개설했고, 그 강의를 1996년도에 출판했다. …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한 역사 형태를 갖춘 기독교 교리를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기독교 교리가 진리라는 사실을 해명하고 판단하기 어렵다.”(13쪽)
(186) 두 가지를 말하겠다. 하나는 철학적인 이해가 없으면 기독교 교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교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역사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하나님이 유일한 분이라는 사실은 다신교에 대한 헬라 철학자들의 비판과 연관된다. 삼위일체론은 플라톤 철학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기독교의 인간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관계를 맺는다. 이런 철학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기독교 역사를, 또는 역사를 통한 기독교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철학적인 이해가 없으면 오늘 기독교 교리가 진리라는 사실을 변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의 과학철학에 대한 이해 없이 하나님의 창조가 그 완성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198) 기독교의 역사관은 종말 사상으로 집약된다. 종말은 역사의 완성이다. 종말이 와야 역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역사 이해에 따르면 역사는 정반합이나 도전과 응전, 또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기보다는 종말로부터 우리를 향해 오시는 하나님의 계시 사건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역사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온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