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심조심, 미리미리. 이 두 키워드가 그의 인생과 건강을 관통한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 ‘20살 넘게나 살 수 있을까’ 하는 주변의 걱정 속에서 자란 그다. “늘 조심스럽게 살아왔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요즘도 그는 강연 준비를 2주일 전에 다 끝내놓는다. 무슨 일이든 미리미리 해놓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2. “내가 초등학교 5~6학년을 다닌 학교가 김일성도 다녔던 창덕소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만경대가 김일성 생가는 아니에요. 김일성 어머니가 거기서 3∼4㎞ 떨어진 칠골이라는 마을 분인데 만경대에 시집을 와서 김일성을 첫 아들로 낳게 되요. 옛날엔 애를 낳을 땐 처가에 가서 낳았잖아요. 그래서 만경대는 김일성 아버지 집이지 김일성이 거기서 낳지는 않았어요. 김일성 외가는 완전히 기독교 집안입니다. 김일성 외삼촌이 강랑욱 목사라고 유명했던 분입니다. 김일성도 15살 때까지는 교회도 다니고 기독교 분위기에서 자랐죠.”
3. “해방되고 9월쯤 김성주가, 김일성 본명이 김성주에요, 돌아왔다고 환영한다고 만경대에 간 일이 있어요. 내가 25살. 김일성은 32세였죠. 사람들이 김일성보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나 물었더니, 친일파 숙청, 사유지 국유화 등 대여섯 가지를 얘기하더라고요. 그때 저건 자기 생각은 아니고 조직에서 나오는 얘기를 교과서 외우듯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얼마 있다가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바뀌어서 집권하게 되죠.”
4. 1920년 태어난 동갑내기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김태길(2009년 타계) 전 서울대 교수, 안병욱(2013년 타계) 전 숭실대 교수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60~70년대 철학자이자 수필가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이 세 명의 1세대 철학자들은 수필을 통해 당시 젊은이들의 윤리-실존적 상처를 어루만지고 위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5. “학문적인 면은 김태길 선생이 앞서고, 사회활동은 안병욱 선생이 앞서고, 나는 그 중간쯤 될 거에요. 한번은 안병욱 선생이 내게 전화를 해서 ‘셋이 일만 했지 이제 80이 넘었는데 1년에 4번 만나서 차도 마시고 우리 셋이 좋은 시간 가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태길 선생에게 전화해서 얘기했더니 ‘그거 하나만 생각하고 또 다른 생각은 안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6. “세 명의 공통점입니다. 철학적 문제를 수필 수상의 형식을 밟아서 전해줬습니다. 상아탑적인 철학에선 철학자들이 대중을 자꾸 자기들에게 오라고 하는데 우리는 가서 데리고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우리 역할이었습니다. 철학에서 인문학으로 확장해 나갔죠. 책도 많이 썼지만 독자도 많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고전이 많이 읽혔다고 본다.”
7.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철학적으로 답해 보는 거죠. 과거엔 철학의 대상이 존재였습니다. 자연이 되기도 하고 종교가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실존주의는 인간 자체를 연구하는 거고, 인간의 문제를 자아에서, 즉 나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절망, 죽음 같은 문제들이 떠올라오게 되죠. 1차대전부터 2차대전 직후까지 실존주의가 세계적인 과제가 됐습니다. 한국에선 6ㆍ25전쟁 이후 실존주의를 받아들였습니다.”
8. “실존주의는 개인 문제인데 지금은 사회과학적 과제가 더 커졌습니다. 사회철학적인 시대라고 할까요. 사회가 자꾸 변하는 거죠. 실존주의를 일으킨 사람은 니체, 키에르케고르 같은 철학자입니다. 그들은 사회문제보다 개인의 문제를 다뤘다고 봐요. 2차대전 이후엔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실용주의 등이 나오면서 개인보다 사회의 문제가 부각됐습니다. 우리 셋도 실존주의에서 출발해서 그걸 바탕으로 한국적 사회문제로 확장해 나갔습니다.”
9. “교육은 콩나물에 물주기와 같습니다. 물을 안 주면 말라버립니다. 대학으로 끝난다고 하면 그걸로 마르는 거고, 50대에 끝난다면 거기서 말라버립니다. 콩나물 물주기는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10. “김태길, 안병욱 선생과 내가 세 명 모두 다 60년대 초반에 미국에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교수들과 백인들이 제일 많이 한 얘기가 바로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선 60이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때 우리 세 명 모두 공통의 자극을 받았습니다.”
11. “종교와 실존철학(윤리, 역사)에서 모든 과제가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사는데 그 결과가 영원과 일치하면 역사에 남고 시간으로 끝나면 역사에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영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철학은 영원에 대한 애모심입니다. 지성적이고 고독한 사람은 영원을 찾아갑니다. 깊은 고독에 빠져보지 않으면 영원을 창조 못 합니다.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은 고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 “오래 살아보니 더불어 살았던 때가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남겨준 것이 쌓여서 역사가 되고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짐을 내가 대신 져준 기억이 행복하게 오래 남습니다. 젊은이의 고민을 대신해 주고, 기독교의 고민, 정치가의 고민을 내가 대신 생각해보았을 때 같은 경우죠. 사랑이 있는 고생은 의미있게 남는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나이 들었다고 후회할 것도 없고, 인생은 다 갔다고 안타까워할 것도 없습니다. 아직 누군가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창조적일 수 있습니다.”
13. “후회되는 것도 많지만 오래 생각 안 해요. 잘못되고 후회되는 것에 매달리는 것보다 잊어버리고 앞으로 가자는 생각이죠. 만회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생각하는 편입니다.”
14. “내가 기독교인인데다 연세대에 있어서 잘 압니다. 대교회주의는 안됩니다. 교회를 위한 교회는 안 된다는 얘깁니다. 그런걸 교회주의라고도 합니다. 그리스도 정신으로 사회와 역사에 희망을 주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교회가 커지면 교회주의에 빠지고 교회가 목적이 됩니다. 그건 아닙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하버드, 예일 등 세계의 명문 대학은 모두 신학교로 시작했지만 그런 학교들을 지금 기독교 대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영원은 영원불변이 아니라 영원히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창조적이고 희망적입니다, 철학자들은 다 그렇게 보는데 교회 목사들이 교리화하면서 형식만 남았습니다.”
15. “지금 내가 100살이 다 되어 가는데 건강의 원동력은 경험 안 해본 사람은 잘 모릅니다. 오래 사신 분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욕심이 적은 사람, 일을 잘하는 사람. 욕심 많은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80 넘어서도 일하는 사람은 다 건강합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해줘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건강 비결 자꾸 물어보는데 대개 나도 모른다고 합니다. 찾아내라고 합니다.”
16. “50이 넘으면 운동하는 게 좋아요. 운동을 위한 운동은 하지 말고요. 독일 갔더니 국민운동이 수영과 자전거더군요. 어딜 가든 자전거길이 있고 공공시설엔 수영장 있어요. 옳다고 봐요.”
17. “다시 태어나도 지금 하는 일 하겠습니다. 교육과 학문.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