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 허버트 사이먼, 제한된 합리성
1957 레온 페스팅거, 인지 부조화
1994년에 출간되고 같은 해 구입한, 이동렬 번역의 학원사 ‘한 권의 책’ 시리즈 21권. 앙드레 지드, <좁은 문>. 23년이 흘렀고, 제롬과 알리사는 아팠다. “그 없이 살 수 없으나 함께 살 수도 없다.”
20. 보티에 목사는 내가 나중에 알게 된 분으로서, 온화하고, 용의 주도하고, 동시에 순진하며, 책략에 대해선 속수 무책이고, 악의 앞에선 완전히 무력한 분이었기에 … 그 훌륭한 어른은 아마도 궁지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27. 나는 그녀를 포옹하려고 몸을 굽혔다. 그녀의 얼굴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이 순간이 내 생애를 결정지었다. 나는 아직도 번민하지 않고서는 그 순간을 되새길 수 없다. (중략) 이제 내 인생의 목적은 공포와 악과 생활로부터 이 아이를 보호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내 신명을 바치기로 작정했다.
30. 설교의 끝 무렵에 이르러서는 너무도 심한 정신적 긴장 상태에 달해 있었으므로, 예배가 끝나자마자 나는 외사촌 누이를 찾아 보려 하지도 않고 빠져 나왔다. 자랑스럽게, 내 결심(나는 이미 결심했던 것이다)을 벌써부터 시련에 부딪치게 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그녀에게서 곧 멀어짐으로써 그녀에게 더욱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153.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름다와지기를 바랐던 것은 제롬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오직 제롬만을 위해 ‘완성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완성은 그가 없이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 오, 주님이여! 그것이 당신의 가르치심 가운데 저의 영혼을 가장 당혹케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대하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은 은혜의 그릇을 넓히는 제련이다.
통회하는 마음에는 즉각적인 성령의 붙드심이 있으나 상한 마음은 본질적으로 영혼의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 변화에 가깝기 때문에 쉽게 타락의 정서와 손잡을 수 있습니다.(193) 비유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딱딱하게 얼어 버린 냉동 식품을 전자 레인지에 잠깐 가열하였다가 꺼내면 식품의 겉은 잘 익어 김이 모락모락 나서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만 막상 그 음식을 깨물면 돌덩이 같은 얼음이 씹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식품을 다시 밖에 내놓으면 안에 있는 차가운 냉기로 녹았던 겉 부분까지 다시 얼어붙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194) 16세기에 영국의 종교개혁을 지지하다가 화형당한 존 브래드포드John Bradford는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에 자신이 고백하는 죄 때문에 마음이 파산 상태를 느끼기 전까지는 결코 죄의 고백을 끝내지 않았다고 합니다.(224)
“1882년 마네는 그의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그림 중 하나인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전시했지만, 언제나처럼 당황해하는 대중의 반응에 실망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살롱 전시였다. 이 시기 그는 수 년 전 걸린 매독으로 인한 통증과 신체 조절 문제로 고생하면서도 작품을 끝냈지만, 이후 심하게 아팠다. 1883년 4월에는 괴저에 걸린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그는 2주도 지나지 않아 4월 30일 쉰한 살 나이로 운명했는데, 이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처음 낙선전에 공개된 지 거의 20년이 지난 때였다.”(로스 킹)
“<걸어도 걸어도>와 <원더풀 라이프>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소설 <환상의 빛>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장편 연출 경력을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불현듯 남겨진 자가 삶에 끝없이 메아리치는 비극적 순간의 의미에 대해 곱씹는 이야기니까. 이때 미야모토 테루가 눈을 두는 것은 난폭하게 틈입한 짧은 순간이 아니라, 그곳을 향해 나선형을 그리며 고통스럽게 맴도는 긴 세월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걸쳐 있는 박명의 빛줄기를 바라보며, 그는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을 또박또박 적어나간다. 생의 진창 속 시린 발목을 이제 그만 문질러 없애고 공기 속으로 휘발되고 싶은 피로가 있다. 하지만 그 빛 너머로 훌쩍 넘어갈 수 없는 지금, 대답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말을 걸고 또 건다. 미야모토 테루가 그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그랬다. 해답이 끝없이 미끄러지는 질문들의 연쇄가 결국 문학을 만들고 영화를 빚는다. 아마 삶도 그럴 것이다.”(이동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