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ly 22nd, 2018

July 22, 2018: 1:04 pm: bluemosesErudition

52. “어느 날 난 마흔세 번이나 해 지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조금 후에 넌 이렇게 덧붙였지. “아저씨도 알 거예요. 누구나 슬픔에 잠기면 석양을 좋아하게 된다는 걸……”

152~153. “아니야, 나는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야?” 어린 왕자가 물었어요. “그건 너무나 잊혀져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야.” 여우가 말했어요. “관계를 맺는다고?” “물론이지. 내겐 넌 아직 수십 만의 아이들과 같은 어린아이일 뿐이야. 난 네가 필요하지 않고, 너 역시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는 내가 수십 만의 여우들과 같은 여우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될 거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가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162. 여우가 말했어요. “같은 시간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가령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세 시부터 나는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되면 이미 나는 불안해지고 안절부절 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댓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지 난 알 수 없을 거야. 의례가 필요해.” “의례가 뭐야?” 어린 왕자가 말했어요. “그것도 너무 잊혀져 있는 것이지. 그건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거야. 이를테면 나를 사냥하는 사냥꾼들에게도 의례가 있지.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 처녀들하고 춤을 춘단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목요일이 아주 신나는 날이지! 나는 포도밭까지 산책을 나가지. 만일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면 날마다 같은 날들일 거야. 그러면 내겐 휴일이 없게 될 거고.” 여우가 말했어요.

_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책이있는마을, 2002.

: 2:53 am: bluemosesErudition

51. 하인은, 육 할은 공포에, 남은 사 할은 호기심에 사로잡혀 한동안은 숨을 쉬는 것도 잊고 있었다.

53. 그걸 보고 하인은 처음으로 명백하게 노파의 생사가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 그리고 그 의식은 지금까지 요란하게 타오르던 증오심을 어느 틈에 식혀 놓았다. 뒤에 남은 것은 그저, 어떤 일을 했는데 그것이 원만하게 성취되었을 때 느끼는 편안한 자신감과 만족감뿐이었다.

54. 우선은, 내가 지금 머리카락을 뽑던 여자 말인데 뱀을 네 치 길이로다가 토막을 쳐 말려 가지고는 말린 생선이랍시고 대궐 지키는 병졸들한테 팔러 다녔어. 역병으로 죽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팔아먹고 돌아댕겼을 거여. 게다가 이 여자가 파는 마른 생선은 맛이 좋다며, 병졸들이 줄창 반찬거리로 사 대지 않았겠나.

54-55. 노파는 대강 이런 의미의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하인은 칼을 칼집에 집어넣고 칼자루를 왼손에 잡은 채 차갑게 가라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물론 오른손으로는 뺨 위에 벌겋게 고름이 고인, 큼직한 여드름을 매만지며 들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하인의 마음속에 어떤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까 문 아래 서 있을 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용기였다. 또한 아까 이 문 위로 올라와 노파를 붙잡았을 때의 용기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용기이기도 했다. 하인은 굶어 죽을지 도둑이 될지에 대한 고민만 없앤 것이 아니었다. 그때 이 남자의 마음이 어땠는가 하면, 굶어 죽는다는 선택지는 거의 떠오르지조차 않을 정도로 의식 저 너머에 밀려나 있었다.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민음사, 2014.

: 2:23 am: bluemosesErudition

다음 세대는 복음화율 4% 미만의 미전도 종족으로 전락한다. 성경을 대하는 자세를 변혁해야 한다. 주일학교(놀이) VS. 기독학교(공부).

: 2:00 am: bluemosesErudition

1415년 10월 25일 프랑스 작은 마을 아쟁쿠르 인근 평원에서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 간의 전투는 영국이 프랑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전투였다. 영국 왕 헨리 5세는 프랑스 왕위계승권이 영국에 있음을 주장하며 6개월 전 1만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노르망디에 상륙했다. 이날 새벽 아쟁쿠르에 도착한 영국군의 상태는 처참했다. 6개월간 계속된 전투와 행군으로 병력은 6000여명으로 줄었고 이질과 기관지염을 앓고 있는 병사들도 많았다. 게다가 전날 밤 비를 맞으며 행군한 탓에 영국군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침 안개가 걷히자 영국군은 2만여명의 프랑스군이 자신들보다 높은 곳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프랑스군은 유럽 최강의 군대로 최고의 갑옷과 칼, 전쟁용 도끼와 창, 철퇴 등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전투는 시작도 하기 전에 프랑스군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다. 헨리 5세는 탈진 상태에 있는 병사들을 향해 유명한 ‘성 크리스핀 축일의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전투에 참가할 용기가 없는 자는 떠나라. 그런 자들에게는 허가증을 발급해주고 여비도 줄 것이다. 우린 우리와 같이 죽기를 두려워하는 자들과 같이 죽고 싶지 않다”며 “오늘은 성 크리스핀의 축일이다. 오늘부터 세상의 종말까지 영원히 그날은 우리를 기억하지 않고는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나와 같이 피를 흘리는 사람은 나의 형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국군은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프랑스군을 대파했다. 당시 새로운 병기였던 장궁(長弓)의 역할도 컸다. 그러나 자신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행군하는 왕의 존재와 피를 끓게 하는 그의 연설로 고무된 영국군의 투지가 원동력이었다.

: 1:44 am: bluemosesErudition

9.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36-37.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43~44. 저물녁, 지평선 너머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 위로 붉은빛이 번지면 할머니는 스스로 하루 노고를 치하하듯 담배를 꺼내 물었다. 능숙한 폼으로 고개 숙여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주여, 저를 용서하소서…” 했다. “할머니, 용서가 뭐야?” 아이스박스 캐리어 옆에서 흙장난을 치던 찬성이 물었다.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할머니는 대답 대신 볼우물이 깊게 패게 담배를 빨았다. 담배 연기가 질 나쁜 소문처럼 순식간에 폐 속을 장악해나가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 소문의 최초 유포자인 양 약간의 죄책감과 즐거움을 갖고서였다.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찬성이 채근하자 할머니는 강마른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바닥에 톡톡 털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87. 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미래에서 봄이 새고 있었다.

92. 이수는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이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 있었다.

97. 도화는 잘 개어놓은 수건처럼 반듯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도화는 인내심이 강했고, 인내심이 강했기 때문에 쾌락이 뭔지 알았다. 이수는 도화의 그런 몸을 사랑했다.

119. 더이상 고요할 리도, 거룩할 리도 없는, 유구한 축제 뒷날, 영원한 평일, 12월 26일이었다.

150. 햇빛이 충분치 않은 공간에선 이따금 플래시가 터졌다. 사진기는 펑! 펑! 시간에 초크질을 하며 현재를 오려갔다.

151. 빛에 관해서라면 하나 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가 모닥불 쬐듯 티브이 가까이 앉아 전자파를 쐬고 있는 모습이다.

153. 누군가 양동이에 소음을 담아 우리 머리 위에 쏟아붓는 기분이었다. … 아버지는 집에서 미리 준비해왔을 ‘대화에서 용건을 뺀 나머지 말’을 다 하고 난 뒤 난처해했다.

158. 해가 지면 벌판 위로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지방 소도시는 서울보다 저녁이 빨리 찾아왔다. 강의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면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더불어 이상한 흥분과 각성도 약기운마냥 맴돌았는데, 어느 땐 누가 아무리 어려운 질문을 해도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길에서 맞는 어둠은 매번 낯설었다. 밖은 깜깜해 지금 내가 지나는 데가 어딘지,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럴 땐 내가 어딘가 무척 먼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는 ‘도시가 아니면서 도시가 아닌 것도 아닌’ 공간을 한참 가로질렀다. 미분양 아파트와 아웃렛, 비닐하우스와 공장, 공원묘지와 화원, 진흙오리구이며 장어구이 따위를 파는 보양식당과 프로방스풍 모텔을 비껴갔다. 수도와 지방의 이음매는 무성의하게 시침질해놓은 옷감처럼 거칠었다. 어둠 너머론 논과 밭이 지루하게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서울 톨게이트 쯤 오면 꼬리를 길게 늘인 자동차 행렬이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수많은 불빛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중심을 향해 빨려들어갔다.

175. 아버지는 전보다 더 늙어 있었다. 아마 아버지의 눈에 비친 나도 그랬을 거다. 총기 흐려진 눈, 주관과 편견이 쌓인 입매, 경험에 의지하는 동시에 체험에 갇힌 인상을 보았을 거다.

181-183. 아버지를 만난 날, 그러니까 아버지가 내게 돈을 빌리러 집 앞까지 찾아온 날,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버지는 팔을 길게 뻗어 발신자 이름을 확인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사물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는데, 오래전 우리를 떠난, 그것도 ‘여자’ 때문에 떠난 젊은 아버지가, 노안이란 걸 깨달아서였다.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발신 번호를 판독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바람에 내가 휴대전화 화면에 뜬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등산복 차림이었다. 아버지와 그 여자는 볼을 맞댄 채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 뒤로 탁 트인 하늘과 사방이 울긋불긋하게 물든 겹겹의 산봉우리가 보였다. ‘둘이 정상에 올랐나보다……’ 조소인지 질투인지 모를 감정이 일었다. ‘등산이라니, 참 전형적으로 사신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창밖으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이국의 불빛이 보였다. 비행기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멍하니 응시하다 휴대용 안대를 쓰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섯 시간 동안 일단 아무 생각도 안 할 작정이었다. 잠을 청하러 천천히 숨을 고르는데 속에서 기체인지 액체인지 모를 무언가가 뜨겁게 치밀어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침착하게 그것을 내려보았다. 그러곤 마음속으로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왕왕거리는 비행기 소음 사이로 누군가 내게 “더블폴트”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187. 반쯤 살아 있는 식재료를 만지면 늘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금기이되 아주 오랫동안 어겨온 금기를 깨는, 죽은 것을 죽이는, 심드렁한 희열과 혐오가 인다.

_ 김애란,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