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족적 존재, 영혼의 전환, 훌륭한 삶
1. Samuel Smiles(1812~1904)는 단순히 정치 개혁만으로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개인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조(Self-Help, 1859)’의 정신을 설파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낳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낳”으며, 이는 제2의 천성으로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
2. 중산층은 “4년제 대학을 나오고, 한 직장을 10년 이상 다니고, 월소득이 400만원 이상이며, 30평 이상되는 아파트에, 2000cc 이상 자동차를 굴리는 사람”인가? Georges Pompidou(1911~1974)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악기를 다룰수 있는가? 수준급 이상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있는가? 외국어 하나 쯤은 자유롭게 구사하여 폭넓은 세계 경험을 하는가? 지우들을 초대하여 대접할 수 있는 자신있는 요리가 있는가? 사회 정의가 흔들릴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설 수 있는가?”
또 한 번 낙방했다. 낯익은 위로가 여전히 낯설다. 그러나 기억한다.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실패’는 유일한 길임을. 8년만의 대학원 졸업이었기에, 그래도 이만큼 자랄 수 있었다.
56인의 삶, 56인의 넋: 이들은 유독 감동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머니 수술비를 위해, 홀로 되어 ‘살길을 찾아’ 시리고 힘들다는 해군에 지원”한 장병들의 전형적인 초상이다.
“남기훈 상사(36): 군 생활 중 정보처리 기사 등 자격증 7개를 딸 정도의 노력가였다. 박봉으로 부친과 형의 병원비를 감당하고, 결혼 4주년 기념으로 직접 수놓은 십자수를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김종헌 중사(34):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두 동생의 진학을 위해 자신은 대학을 포기했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해군에서 내연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던 그는 충무공이순신함장 등 표창을 다수 받았다. 결혼 7년 만에 얻은 아들이 겨우 갓 돌을 지났다.”
“최정환 중사(32): 지난해 결혼해 딸을 낳았다. 어린 딸이 크는 것을 자주 보고 싶다며 육상 근무를 지원한 상태에서 변을 당했다.”
“박경수 중사(29): 2002년 6월 제2 연평해전에서 총상을 입었으나 이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싸웠다. 국무총리 전투유공 표창을 받고 ‘용사’ ‘영웅’으로 불렸다. 그러나 해전 이후 전역까지 생각했다. 딸을 보며 공포를 극복하고 다시 천안함에 올랐다. 2004년 혼인신고만 마친 부인과 이번 훈련 뒤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문영욱 하사(23): 식당일을 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 2007년 9월 홀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혈혈단신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살길을 찾겠다”며 휴학하고 2008년 4월 해군에 지원했다.”
“김동진 하사(19): 뇌종양이었던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군에 입대했다. 그러면서도 적은 월급을 쪼개 매달 유니세프와 복지관에 기부하고 봉사활동에까지 참여했다.”
“이상민 병장(21): 청각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정신지체 3급의 큰누나에게 특히 잘했다. 월급은 쓰지 않고 부모님 통장에 모두 넣어드렸다.”
“김선명 상병(21): 산업체의 기능요원으로 뽑혀 군 면제가 가능했지만 현역을 지원했다. 공고를 졸업한 후 어렵사리 모은 600만원은 결국 써보지 못했다. 중학교 때 여읜 어머니 기일에 맞춰 휴가를 조정하는 등 가족을 우선했다.”
“나현민 일병(20): 처음엔 불평했지만 최근에는 잘 적응하는 중이었다. 도시락을 직접 준비해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다녔던 나 일병은 제대 후 대학 입시를 준비해 수학과에 가겠다고 했다.”
“정태준 이병(20): 대학 전기과 1학년 재학 중일 때 어머니가 수술을 받았다. 종양 제거 수술에 돈이 많이 들어 휴학하고 입대했다. 3월 초 100일 휴가를 나가 그동안 모은 월급을 부모에게 드렸다. 배멀미가 있어 고생하면서도 가족에게는 내색하지 않는 장남이었다.”
0. 질문없는 교육: 정보와 지식 _ “질문이 원천 봉쇄된 ‘인터넷 강의’는 문제풀이에 관한 질문을 無化시킬수록 고평가된다. 질문없는 탐구는 기존의 것을 확인할 뿐 새로운 것을 궁리하지 않는다. 이는 자본주의도 경멸하는 바이다.”
1. 연극 <바냐 아저씨>: 고전의 정의와 의의
1-1. Daily Me의 폐해
1-2. 원문(”知行竝進”)을 강독하지 않고, 이차문헌에 의존하는 중등임용고시 출제위원: “늘 논의되는 작품만 갖고 논문을 쓰다 보니, 작품을 읽고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쓴 꼴이 되어 버렸다(박희병, 2009).”
1-3. 세계관 없는 기술자(techne)
1-4. 지혜의 막장: 외양과 결과의 세계에서 본질과 당위를 추구한다.
2. 이상적인 교육, 그 형식과 내용
2-1. 지, 정, 의: 서정성과 보편성
2-2. 진, 선, 미: 본질과 당위 / 외양과 결과
3. 철학 - (사회) - 교육: 2 Mechanism, 3 Act, 12 Scene
4. 고전과 세상: 시대가 직면한 본질적 가치의 근원적 탐구와 사회의 교육: 윤리의 변혁, 그 역사적 고찰
4-1. Pedagogy: 펠로폰네소스 전쟁
4-2. Andragogy: 국가
5. 과제 기한과 양식
1.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 좋은 보고와 균형있는 코멘트 그리고 은근한 힘의 통찰. <<현대 일본을 찾아서>> 옆에 두면 적절할 듯.”
2. “노마 필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 너무 좋은 책이다. 국가와 개인, 전쟁과 평화, 인권, 계급, 일본과 식민지, 미국과 동아시아, 혼혈아, 여성문제, 전통과 현대,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한 사색거리가 가득하다.” ”특수를 보편으로 고양시키는 글쓰기가 돋보인다.”
3. “쓰루미 슌스케, <<전향>>. 15년 전쟁기(1931~1945) 일본지식인들의 모습을 통해 사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decency.” “더 중요한 것은 독서의 순서를 확실히 잡았다는 거지. 마루야마나 고진은 아주아주아주 나중에 읽어야 한다는 것.”
4.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에 이이다 다이조가 쓴 한국어판 서문”: 그는 ‘思想史’보다는 ‘精神史’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화려한 군주>>, <<21세기 천황제와 일본>>을 읽은 다음 ‘천황제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불과 9페이지에 앞의 두 책 내용이 남김없이 담겨 있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아니 접속사까지도 버릴 수가 없다. 후지타 쇼조! 소름이 쫙 끼친다.”
5. <<화려한 군주>>, “존 다우어, 노마 필드, <<21세기 천황제와 일본>>, 슌스케, 쇼조, 마루야마. 이렇게 읽고 시간 남으면 고진을.”
* 사상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체제로서의 윤리적 습관이다: 체면, 품위, 예절.
知와 情과 意를 점층적으로 포섭하는 영향력의 극대화가 형식(form)의 몫이라면, 眞과 善과 美를 인격적으로 통합하는 영향력의 체계화는 내용(substance)의 몫이다.
실존주의는 그것의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가장 급진적인 자기변혁 사상으로 태동했으나 가장 보수적인 자기계발 담론으로 귀결되었다.
1. “나는 칸트파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서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의 느슨함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 말을 아나키스트(어소시에이셔니스트)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그들의 윤리성이나 자유 감각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거기에 인간을 강제하는 사회적 관계의 힘에 대한 논리적 파악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그들의 시도는 항상 무력하고 비극적으로 끝난다(柄谷行人, 2001[2005]: 17).”
2. “마을공동체라고 하면 긴밀하고 친화력이 있는 집단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래 전에 기다 미노루라는 필명으로 <미치광이 부락 주유 기행>(1948)이라는 책을 쓴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프랑스에서 공부한 인류학자였다. 이 책은 차별적인 단어를 쓴 제목 때문에 한때 배척되기도 했지만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그저 평범한 일본의 농촌을 우주인이 처음으로 보는 것처럼 관찰한 것이다. 그 중에서 인상에 남는 것은 농민 사이에 우정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정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자기’가 없는 것이다. 중심은 ‘사회’고, 그들은 그것을 무서워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고립을 두려워해 사이 좋게 지내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그럴 뿐이다. 근본적으로는 이기주의적인데도 ’자기(에고)’는 없다(柄谷行人, 2000[2001]: 29).”
3. 자아의 위계에서 경계로의 전환을 통해 역설이 해명되었다. ‘도덕감정’(혹은 윤리) 비판에 머물러 있던 이론적 교착상태에서 CP는 이전의 사유를 재전유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