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13th, 2014

September 13, 2014: 11:25 pm: bluemosesErudition

“고백이라는 것 자체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만, 미시마 유키오의 말처럼 진실한 자신의 모습은 결코 드러나지 않습니다. 고백하는 자는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남의 시선에 대한 자기검열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SNS는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로 하여금 고백하게 만듭니다. 그 고백은 만들어진 고백이고 타인을 의식한 고백입니다. 말투와 내용이 일기의 형식을 빌려오지만, 철저히 타인의 눈을 의식한 정제된 고백인 것입니다. 남에게 고백하기 위한 자신의 삶은 꾸며진 거짓입니다. 고백의 의미가 비밀과 숨겨진 무언가를 내뱉는 것이라면 미디어 시대의 고백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사생활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현재,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어 하는 심리로 인해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 SNS의 고백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이의 모습이다.

: 6:51 pm: bluemosesErudition

마수걸이 [명사] 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 또는 거기서 얻은 소득. 맨 처음으로 부딪는 일.

: 6:23 pm: bluemosesErudition

“The significant problems we have cannot be solved at the same level of thinking with which we created them.”

“The most beautiful thing we can experience is the mysterious. It is the source of all true art and science.”

“If A is success in life, then A equals x plus y plus z. Work is x; y is play; and z is keeping your mouth shut.”

: 4:01 pm: bluemosesErudition

“글자 꼴에 그 기능을 관련시킨다는 착상과 그 착상을 실현한 방식에 정녕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오래고 다양한 문자사에서 그 같은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소리 종류에 맞춰 글자 꼴을 체계화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글자 꼴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조음 기관을 본뜬 것이라니. 이것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grammatological luxury다.”

훈민정음 연구로 학위를 받은 미국인 동아시아학자 게리 레드야드Gari Keith Ledyard는 “한글의 제자원리를 설명하며 문자학적 호사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한글을 창제한 동기가 불순했든 순수했든, 창제자들의 음운론 지식은 아마 그 당시 세계 최첨단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한글이 만들어지고 반포된 게 15세기 중엽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는 있습니다. 로마문자보다 2,000년 정도 뒤에 만들어졌어요. 그동안 지식과 지혜가 축적됐을 테니까 로마문자보다 더 뛰어난 게 큰 자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한글보다 더 뛰어난 문자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저 혼자서라도요.” ”한글의 원래 이름은 훈민정음입니다. 훈민정음이 무슨 뜻이죠. 이걸 문장이라고 생각하고 해석한다면 ‘바른 소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친다’가 되겠지만, 명사구로 생각한다면 ‘백성들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그러면 이 ‘바른 소리’라는 건 뭘까요? 바로 당대의 중국어 발음입니다. 삼국시대 이후 한자가 수입되면서, 수많은 중국어 단어가 한자어의 형식으로 차용됐습니다. 그렇지만 그 단어들은 한국어 음운체계에 동화돼 세종 시절에는 중국어 발음과 너무 달라져버렸어요. 지금도 그렇죠. 天을 한국인들은 ‘천’이라고 읽지만, 중국인들은 ‘티엔’ 비슷하게 읽습니다. 세종이 한글을 반포하며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고 말했죠? 세종은 이걸 참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때까지의 한국어 한자 발음을 되도록 중국어 원음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것입니다.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하니까 소리글자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니까 ‘훈민정음’에서 ‘정음’이라는 건 대체로 중국인들의 발음에 가까운 소리를 말합니다. 그 소리를 백성에게 가르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든 겁니다. 그 당시 한자 옆에 표기된 훈민정음을 보면 실제로 15세기에는 그 한자를 그렇게 읽지 않았는데도 되도록 당대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토를 단 게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고종석, 2014)

: 2:58 pm: bluemosesErudition

“한국어에서 용언이라는 것은 활용하는 말입니다. 동사, 형용사, 서술격조사 ‘-이다’, 이게 용언입니다. 그 용언을 명사형으로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용언에 ‘ㅁ’이나 ‘음’을 붙이면 명사형이 됩니다. 예컨대 ‘사랑하다/사랑함’ ‘가다/감’, 이것이 제1명사형입니다. 그다음에 ‘기’를 붙여도 명사형이 됩니다. ‘사랑하다/사랑하기’ ‘가다/가기’, 이것이 제2명사형입니다. 그러니까 명사형은 이렇게 두 가지가 있어요. 또 용언의 어간에 아/게/지/고를 붙이면 부사형이 됩니다. 그 순서를 따라 흔히 제1부사형, 제2부사형, 제3부사형, 제4부사형,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다 학교문법의 용어입니다. 어떤 행위가 다른 행위의 수단이 될 때, 흔히 용언의 제1명사형에 ‘으로써’를 붙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왠지 좀 무거워 보입니다. ‘나는 ~함으로써 ~하겠다’, 이런 식의 표현 말이에요. 이런 제1명사형 플러스 ‘으로써’는 거의 예외 없이 제1부사형으로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문장이 훨씬 깔끔해 보입니다. 모든 경우에 그러라는 게 아니라, 문맥을 살펴서 바꾸라는 겁니다. 예컨대 ‘나는 휴전선을 지킴으로써 국가안보에 이바지하겠다’는 ‘나는 휴전선을 지켜 국가안보에 이바지하겠다’로 고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한국어답습니다. 용언의 제1명사형 플러스 ‘으로써’는 문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바로 제1부사형으로 바꾸세요.”

* 고종석, <고종석의 문장>, 알마, 2014, 255~256쪽.

: 2:29 pm: bluemosesErudition

“일본어를 직영한 ‘~에의’ ‘~로의’ 같은 겹조사는 절대 쓰지 마세요. 10여 년 전 채영주라는 소설가가 작고했습니다. 어느 문학잡지에 그이에 대한 추도문이 실렸는데 제목이 “영주에의 추억”이었습니다. 이건 진짜 일본어투 표현입니다. ‘추억’을 동사로 바꿔서 “영주를 추억함”이라고 쓰거나 “영주 생각” 정도로 쓰느 것이 좋겠습니다. ‘~에 있어서’ ‘~에 있어서의’도 마찬가지로 일본어를 직역한 표현입니다. 저는 이런 표현을 들으면 숨이 콱 막힐 지경입니다. 특히 공부를 많이 했다는 학자들이 이런 표현을 많이 쓰는데, 외래어나 외국어식 표현에 어지간히 너그러운 저도 이 말은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습니다. 한국에서 헤겔 연구를 가장 많이 한 철학자가 아마 임석진이란 분일 겁니다. 이분이 독일에서 쓴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출간했는데, 그 제목이 <헤겔에 있어서의 노동의 개념>입니다. 이건 최악의 한국어입니다. 원래 박사학위 논문 제목 을 직역한 것인데, 저는 독일어로도 이 제목이 좀 늘어지는 것 같아요. 저 같았으면 ‘Hegels Begriff der Arbeit’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헤겔에 있어서의 노동의 개념’, 이건 최악의 한국어입니다. 한국어답게 고치자면 뭐가 될까요? 우선 ‘에 있어서’ 이런 건 필요 없는 말입니다. 그 뒤의 ‘의’도 필요 없는 말입니다. ‘헤겔의 노동개념’이라고 쓰면 딱 맞습니다. 얼마나 깔끔해요? ‘헤겔에 있어서의 노동의 개념’과 ‘헤겔의 노동개념’, 과연 이 두 표현의 뜻이 다른가요? 똑같은 말입니다.”

* 고종석, <고종석의 문장>, 알마, 2014, 125~126쪽.

: 11:51 am: bluemosesErudition

2006. 4. 3. ~ 2006. 5. 23.

: 11:18 am: bluemosesErudition

중식 시간, 이따금 브루노 발터의 브람스와 거닐 것.

: 10:16 am: bluemosesErudition

ISA 12:2 ESV

“Behold, God is my salvation; I will trust, and will not be afraid; for the Lord God is my strength and my song, and he has become my sal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