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은 없고, 득도한 기만의 얼굴과 음성만 분분하다. 저들은 단련 없이 마스터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고 집중하지 않는 등 면학분위기가 점점 엉망이 됐다.” “가끔은 너무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쉬움이 많았다.” “당시 제 나이가 마흔일곱이었습니다. 학원으로 나오기엔 좀 늦은 시기였죠. 정말 돈을 벌고 싶었다면 적어도 30대 후반엔 나왔을 거에요. 수준이 높은 아이들을 한꺼번에 가르칠 수 있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업체에서 말하더라고요. 실제로 아이들이 수업을 너무 잘들어주고 열정적으로 하더라고요.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이석록)
Romans 8:6-8
For to set the mind on the flesh is death, but to set the mind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For the mind that is set on the flesh is hostile to God, for it does not submit to God’s law; indeed, it cannot. Those who are in the flesh cannot please God.
임상 경험 초기, 프로이트는 환자가 의사를 향해 낭만적이고 성적인 감정을 발전시키는 전이의 과정을 인식하게 되었다. 처음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을 때, 프로이트는 그들의 무의식 속의 생각을 의식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최면술을 사용했는데 곧 이 방법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모든 환자가 최면 상태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둘째, 그는 치료의 성패 여부가 상당 부분 의사에 대한 환자의 감정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환자가 최면 상태에 있을 경우 이러한 감정을 관찰하거나 통제할 수 없었다. 그는 “만일 환자와 나의 인격적인 관계가 방해받으면, 가장 탁월한 성과가 바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예기치 않은 한 사건으로 인해 프로이트는 최면술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루는 내가 오랫동안 예상해 온 일을 아주 생생하게 경험하게 되었다. 내 말을 잘 들어서 최면 요법에서 놀라운 성과를 얻은 여성 환자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는 근원까지 추적해 들어감으로써 괴로움을 해소해 주었다. 한 번은 그녀가 최면에서 깨어나자 팔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하인이 갑자기 들어오는 바람에 우리는 고통스러운 대화를 멈출 수 있었지만 그 후로 그녀와 나는 최면 요법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암묵적 이해를 공유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나는 그 사건이 상대를 억제할 수 없게 만드는 나의 매력 때문이 아니었음을 알 만큼 제정신이었기에, 최면술 뒤에서 작용하는 신비한 요소의 본질을 이제 파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치료술에 관한 추가 권고>라는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이렇게 경고한다. “그러한 유혹을 일으키는 요인은 환자의 미숙한 감각적 욕망이 아니다. 그러한 욕망은 제지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한 욕망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의사의 인내를 요구하는 일일 것이다. 의사가 자기 직무와 치료술을 잊어버릴 위험을 초래하는 요인은 오히려 여성 환자의 미묘하고 목표가 억압된 소망인 것 같다.”
_ 아맨드 니콜라이, <루이스 VS. 프로이트>, 홍성사, 2004, 181~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