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16

November 17, 2016: 4:04 pm: bluemosesErudition

“겸직하면서 영리활동했다고 다 해임하지는 않는다. 성실의무 위반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해임한다.”(이호근)

: 1:42 pm: bluemosesErudition

“He has told you,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es the Lord require of you but to do justice, and to love kindness, and to walk humbly with your God?”(Micah 6:8)

: 1:11 pm: bluemosesErudition

도쿄대에 다니는 여학생을 ‘동대여자(東大女子·도다이조시)’라고 하는데, 직장이나 사석에서 ‘희귀종’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2년 전 경제 주간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는 도쿄대 출신 젊은 주부 네트워크를 심층 취재한 기사에서 “학창 시절 ‘동대여자는 셋 중 하나만 결혼하고 둘은 이혼하거나 혼자 산다’는 소리를 들었다”, “남성 동료·상사가 부담스러워했다”, “주위 엄마들이 ‘도쿄대 나와서 왜 집에 있느냐’, ‘애도 공부 잘하냐?’고 한다”는 등의 하소연을 소개한 적이 있다.

: 11:52 am: bluemosesErudition

“아날학파의 영향을 받아서 그러한지, 역사나 시사는 논해도 인물은 그다지 거론하지 않아요.” 이에 대한 E. H. 카의 입장.

“인간을 개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전기(傳記)이며 인간을 전체의 일부로 취급하는 것은 역사라고 하면서 그 둘을 구별하는 것은, 그리고 훌륭한 전기는 나쁜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하는 것은 솔직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액턴은 ‘인간의 역사관에서 개별적인 인물들이 유발시키는 관심보다 더 많은 오류와 불공정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 역시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G. M. 영(1882~1959)이 그의 책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Victorian England)의 속표지에 적어 넣은 빅토리아 시대의 격언, 즉 ‘하인은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신사는 세상사에 관해서 토론한다’는 격언 뒤로 도피하고 싶지도 않다. 전기들 중의 일부는 진정으로 역사에 기여한다. 내 전공분야에서는 아이작 도이처가 쑨 스탈린과 트로츠키 평전들이 그 두드러진 사례이다.”(69~70쪽)

“나는 지금까지도 다음과 같은 헤겔의 고전적인 정의에 더 고칠 만한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위인이란 자기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고, 그 의지가 무엇인지를 그 시대에 전달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그의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실현한다.’ … 위인은 항상 기존 세력의 대변자이거나, 아니면 현존하는 권위에 도전할 생각으로 그가 힘을 쏟아 형성시키려는 세력의 대변자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수준의 창조성은,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처럼 기존 세력의 등에 업혀 위대해진 그런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크롬웰이나 레닌처럼 자신들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세력을 형성하는 데에 힘을 쏟은 그런 위대한 인물에게서 발휘될 것이다.”(78~79쪽)

: 11:42 am: bluemosesErudition

숭실대 기독교학과(김회권+권연경),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김근주+배덕만), 도서출판 대장간

: 11:09 am: bluemosesErudition

“Arise, O Lord! Let not man prevail; let the nations be judged before you!”(Psalms 9:19)

November 16, 2016: 10:33 pm: bluemosesErudition

숭고, 궁정식 사랑,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 5:26 pm: bluemosesErudition

“북한에서 최고 지도자를 조롱하는 표현은 과거에 상상도 못 하던 일”

: 2:55 pm: bluemosesErudition

“한 번은 다 바치고 다시 / 겨울나무로 서있는 벗들에게 // 저마다 지닌 / 상처 깊은 곳에 / 맑은 빛이 숨어 있다 // 첫마음을 잃지 말자 // 그리고 성공하자 / 참혹하게 아름다운 우리 // 첫마음으로”

_ 박노해, “첫마음”, <사람만이 희망이다>, 1997.

: 2:31 pm: bluemosesErudition

“1964년 3월 13일 금요일, 뉴욕 주 퀸스 지역에서 키티라고 불리던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28살의 여성이 지배인으로 일하던 술집에서 야간당번을 마치고 귀가하던 새벽 3시쯤 한 수상한 남성에 의해 자상을 입는다. 제노비스는 분명하고 큰 목소리로 구조 요청을 하였고, 아파트에 살던 동네 사람들은 불을 켜고 사건을 지켜보았다. 제노비스를 살해한 범인인 모즐리는 후에 법정 진술에서 집집마다 불이 켜졌지만 사람들이 사건 장소로 내려올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갑자기 불을 켜고 지켜보던 사람 중 한 명이 사건 장소로 오지 않는 대신 ‘그 여자를 내버려 두시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모즐리는 바로 도망을 쳤고, 제노비스는 난자당한 몸을 이끌고 어느 가게 앞으로 드러누웠다. 그러자 모즐리는 다시 나타나 제노비스의 온몸을 난자했다. 제노비스는 계속 소리를 질렀고, 또다시 아파트 불이 켜지자, 모즐리는 또 도망을 갔다. 제노비스는 힘겹게 자신의 집이 있는 아파트 건물 복도로 걸어갔다. 하지만 몇 분 후에 모즐리가 다시 나타나 제노비스를 강간했다. 이 살인사건은 새벽 3시 15분에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 일어났다. 집에 불을 켜고 제노비스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총 38명이었고, 그들은 직접 사건 현장으로 내려가 제노비스를 구출하지 않았다. 사건이 끝나고 한 명이 경찰에 신고했으나 그녀의 목숨은 이미 끊겨 있었다.” _ 책임이 분산되면 누구나 방관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