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16

December 27, 2016: 1:21 pm: bluemosesErudition

1842년 1월 25일에 쓴 글에서 조지 뮬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주 안의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글을 읽으면서 ‘고아원 운영 기금이 거의 다 바닥이 나고 함께 일하는 사역원들마저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고아들에게 줄 것이 전혀 없는 가운데 식사시간이 되었다면, 고아들에게 줄 음식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있었는가’하며 우리를 무모하다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몹시 악하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울 때를 대비하여 미리 떼어놓은 것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이상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죄성은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 조그마한 여유가 생겨도 주님을 찾지 않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비록 모든 면에서 온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죄악 중에 사는 것만은 피하게 되므로 이런 일까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매우 소중히 여길 것이므로,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모쪼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끊임없이 붙잡아 주시도록 구하기 바란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장랑한다 할지라도 시험이 닥쳐올 때 믿음이 적거나 죄악된 생활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위는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 12:38 pm: bluemosesErudition

Ken Loach(1936) + Paul Laverty(1957)

: 12:16 pm: bluemosesErudition

“<빵과 장미>를 도식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건 무엇보다 켄 로치의 세계관이다. 그는 분명 비타협적인 원칙주의자이지만 관념적인 과격함이 없다. 일거에 승리하기를 바라는 욕심이 없다. 이 영화에서 청소부들은 임금인상을 쟁취하지만, 마야는 멕시코로 추방된다. 그래도 마야는 자존심과 명분을 얻고 간다. 자존심과 명분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켄 로치가 말하는 희망은 거기까지다.”

: 11:57 am: bluemosesErudition

“여주인공 앤지도 영화에서 그들을 착취하다가도 집으로 불러 따뜻한 빵과 수프를 대접한다. 고용주의 이런 면까지 모두 보여주면서 착취 논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 11:51 am: bluemosesErudition

“켄 로치가 감독한 <인부들>은 민영화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철도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다룬 영화다. 대처 이후의 세기말적 우울이 전면에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시장논리가 어떻게 노동자들을 점차 신자유주의의 공모자로 만들어 가는지, 어떻게 그들의 평범했던 일상, 곧 자존심, 활기찬 유머, 동료애, 나아가서 가정과 직장공동체를 서서히 파괴하는지를 잔인할 정도로 덤덤히 보여준다. 생계의 위협 앞에서 동료의 죽음마저 외면하는 주인공들에게 죄의식이 주는 반성적 사유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피해자마저 가해자로 내몰고 가해자의 죄의식을 제도적으로 면제해 주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해악일지 모른다. 어느새 가해의 자리에 서게 된 이들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잡으면서 영화는 끝난다.”

: 11:39 am: bluemosesErudition

“보이지 않는 신을 보이는 증거를 통해 찾는 한, 신은 이미 거기에 없다.”

: 11:22 am: bluemosesErudition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우리 내면에 엄연한, 악의 가공할 힘을 그린 짤막한 소설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양심과 욕망의 권력, 그 둘의 항시적 분열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둘 다 뿌리가 깊어서, 어느 쪽이 진정한 자아인지 구분할 수 없다. 지킬이 확인한 것은 악은 숨어있고, 상상 이상으로 강하며, 사실상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그는 공원벤치에 앉아 자신이 지난 몇 개월간 행했던 선행들이 마침내 살인자 하이드를 영구히 제압했으리라고 흐뭇해하지만, 아래쪽을 보자 그의 손에 힘줄이 솟고 털이 자라면서 자신이 어느새 하이드로 되돌아갔다는 것을 발견한다. 도덕적 노력을 통해 자신을 구원하려 애를 쓸수록 번민은 오히려 커가고 내면의 악은 더 강해질 뿐이라고, 저자는 탄식하는 것이다. 더 이상 지킬로 돌아갈 수 없었던 하이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도스토옙스키의 말년 작품인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신이 없어도 도덕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다. 구원이 외부에서 오지 않는 한, 인간은 지킬박사의 절망적 딜레마에 영원히 갇힐 운명일지 모른다.”(고세훈)

: 12:10 am: bluemosesErudition

Ruminate anew daily over what true faith is.

December 26, 2016: 10:51 pm: bluemosesErudition

“For in him all the fullness of God was pleased to dwell”(Colossians 1:19)

: 10:11 pm: bluemosesErudition

“고대 동남아시아 왕들이 불편한 관계에 있는 신하에게 진귀한 동물인 하얀 코끼리를 선물한 데서 유래한 말. 신하는 큰 관리 비용을 들이다 가산을 탕진하는 낭패를 보게 된다. 스포츠계에선 유지 관리에 거액을 잡아먹으면서 쓸모없는 경기장을 ‘하얀 코끼리’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