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ne, 2010

June 13, 2010: 3:13 am: bluemosesErudition

가정교회는 대위임령(go and make disciples)에 의거하여, 旣신자의 교회 내 수평이동을 지양하고 非신자의 영혼구원(baptizing)과 제자육성(teaching)을 추구한다. 제자화의 관건은 전도나 변증이 아닌 섬김이다. 제자 및 선교훈련이 무력한 이유는 일상을 섬김으로 체화하지 않은 채 거시적 헌신을 종용하기 때문이다. <신앙감정론>에 따르면 신앙적 초월은 신비주의적 은사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처지와 무관하게 타인을 섬기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을 지양할 수 있는가. “가족은 포기할 수 없다.” “섬김의 길목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June 10, 2010: 9:41 pm: bluemosesErudition

“철학자들을 보통의 연대순으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 또한 유념해야 한다. 이것은 헤겔의 구성 전략의 결과인데, 그는 존재와 사유의 前 형이상학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조화에서 시작하여 실체성이나 개체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강조점들 사이의 동요로 나아간 뒤, 독일 관념론과 헤겔 당대의 철학으로 귀결되는 흐름을 따라간다. 이러한 구성 때문에, 몇몇 경우에는 연대상으로는 나중에 살았지만 먼저 고찰된 철학자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홉스와 로크의 비교가 그것이다.”

<인간의 조건>(1958)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 보다 연대상으로는 앞서지만 뒤에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조건>의 문제의식 - “사유하지 않음”, 즉 타인의 고통에 대한 성찰의 부재 - 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완연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 9:05 pm: bluemosesErudition

“갈 길이 급한 나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남의 책 해설이나 하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 꼭 알맞은 작업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1930년대부터 대학에서 원서로 읽히기 시작했으나 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 책이 제대로 이해되었다고는 단언하기 어렵”다. “논지의 전개방식에 익숙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용어도 난삽하기 그지없어서 읽고서도 헛 읽은 것 같다는 독자들이 허다하다. 그래서 나는 <존재와 시간>을 읽지 않은 독자도 이 해설서만으로, 마치 <존재와 시간>을 읽은 것처럼, 그 책의 문제의식과 내용, 서술방식, 전개과정 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평이하고 간결하게 써주면 그것도 제법 의미있는 일이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존재와 시간>은 당시 마르부르크대학에 있던 하이데거가 쾰른대학으로 옮겨간 선임자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후임으로 오르디나리우스 프로페소르(정교수)가 되기 위해 급하게 쓴 책인데다가 내용이 전적으로 현존재 분석이므로 중언부언이 많은 책이다. 이 해설서도 자연히 반복되는 용어 사용과 문장이 많으리라고 짐작된다. 이 책으로 인해 우리나라 철학계와 독자들에게 이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어려운 책이라는 선입견이 불식되기를 바란다.”(2003년 2월 수지에서 九峰 蘇光熙 적음)

: 2:34 pm: bluemosesErudition

다원주의적 가치는 가격의 물신주의로 환원된다. 다양성의 획일화는 極的 소통의 아이러니다.

June 8, 2010: 10:39 pm: bluemosesErudition

1. 민주적 리더십에 관한 기존의 입장을 폐기한다. 리더십은 동의에 의한 전위이다. “요약하면 교육은 학습을 간섭/조정/통제하는 행위이며, 학습의 자유는 가장 근본적인 자연권이므로 학습하려는 자의 자유의사에 의한 위임에 의해서만 교육권은 인정되는 것이다. 학습의 자유의 구체적 행사는 교육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으로 표현된다. 언제나 학습권이 교육권에 우선하는 것이고 그 반대는 정당화될 수 없다.”(김신일, 2009: 480)

2. “사람을 움직이는 게 이익과 공포 아니겠나.” 리더십 연구는 인간을 추동하는 힘에 관한 고찰이다. 이는 타율에서 자율로, 거래에서 변혁으로, 조건에서 무조건에 이르는 9단계로 정리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팔로워가 자신의 안위를 초탈하여 리더를 추종하도록 유도한다. 교육은 학습을 통제하고 추동하는 메커니즘으로서, 팔로워십을 통해 성취되는 리더십이다. 학습권은 교육권에 우선하며 교육권의 근거는 학습권의 위임이다. 리더십의 본질은 교육을 거부할 수 없는 학습을 유발하고, 더 나아가 교육과 학습이 일치되도록 하는 것이다.

June 7, 2010: 8:37 pm: bluemosesErudition

‘공교육 정상화’는 지위경쟁이론 따위의 간단한 논리로 반박될 뿐 아니라, James Coleman의 1966년 보고서 <Equality of Educational Opportunity>에서도 그 한계가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 “학교의 교육조건은 학업성취 차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 8:18 pm: bluemosesErudition

1.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은 지난 4일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granma)에 기고한 ‘제국과 거짓말‘이란 제목의 글에서 “미국이 북한을 비난하고 긴장을 조성시켜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 부대 주둔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의 전함을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2. “대잠 초계함의 주요 임무는 잠수함과의 전투다. 그런 초계함이 어떻게 잠수함에 의해 침몰될 수 있을까. 더 이상한 건 왜 어떤 승무원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잠수함과의 전투 임무가 부여된 초계함이 잠수함에 의해 폭파되었다면 거기엔 해군이 아니라 허수아비만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초계함은 잠수함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어뢰가 발견된다면 발사지점에서 발견돼야 했다. 초계함은 어뢰를 피하거나 잠수함을 반격했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3. “5월 11일 시점에서 ‘북한-어뢰 프레임’에 갇히지 말자고 말할 때만 해도 나는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일종의 영구미제(永久未濟) 상태로 끌고 가면서 북의 소행이라는 냄새만 잔뜩 피우다가 선거가 끝나면 적당히 물러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어찌 보면 우리 정부의 과감성이랄까 저돌성을 내가 과소평가 했다.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웃음) 그러니까 나쁘게 보자면 적당히 장난치려고 했는데 장난이 너무 심해서 장난이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이제 정부는 추가자료를 제시해서 국민과 국제사회를 납득시키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망신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 밖에 길이 없어졌다.”
: 7:46 pm: bluemosesErudition

‘교육과 평등’의 연계는 그 결정 원인이 외부에 있다는 점에서 교육[사회]학이 아닌 [교육]사회학의 연구과제이다.

: 6:11 pm: bluemosesErudition

<Law in American History>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법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그것을 조정하는 폭력이다.

: 5:28 pm: bluemosesErudition

철학사(History of Philosophy)가 진리 탐구의 역사라면, 사상사(History of Thourht)는 주의 주장의 역사이고,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는 시대상 변화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정신사精神史는 무엇인가. 이는 시대정신 곧 대중의식 변천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