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rch 20th, 2017

March 20, 2017: 3:39 pm: bluemosesErudition

“이봐, 대체가능한 헌신은 노가다야.”

: 11:03 am: bluemosesErudition

“내가 오늘 현실을 ‘매트릭스’라고 표현한 건 보수가 어지간한 민주시민의 진보와 정의는 품어버리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상식, 정의, 공정 보도, 친일 독재 척결 같은 구호들이 무력해진 후를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지금을 ‘부끄러움을 잊은 시절’이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파는 완전한 부끄러움을 추구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잊고, 좌파는 나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을 게시함으로써 부끄러움을 잊는다.”

: 10:59 am: bluemosesErudition

1984. 푸코가 서거한 해, 하버마스가 남긴 헌사.

: 12:56 am: bluemosesErudition

정성평가는 어떻게 필증성을 확보하는가.

: 12:52 am: bluemosesErudition

“슈츠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사회과학의 철학적인 근거짓기의 문제, 요컨대 주관적 의미를 대상으로 하는 객관적 과학은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라는 문제였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과학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다양한 사회관계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행위자로서의 인간이다. 그들은 각자에게 고유한 생활사와 역사적 · 사회적 배경에서 유래하는 지식의 축적을 지니며, 그에 기초하여 타자와의 나날의 상호작용을 통해 주위의 세계를 끊임없이 의미짓고 해석하며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요컨대 사회과학이 취급하는 사실과 사건은 모두 행위자의 주관적 의미에 의해 이미 매개되고 있으며, 과학적 조작에 선행하여 이미 의미적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엄밀한 사회의 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의적인 과학적 구성물을 외부로부터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세계가 의미적으로 구성되는 방식 그 자체를 대상에 입각하여 밝힐 필요가 있다. 이리하여 슈츠는 학문을 포함하여 우리의 일체의 영위와 경험이 그것을 전제함으로써만 가능해지는 공통의 배경지식으로서의 일상생활을 의미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행위자의 주관적 과정을 이해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현상학을 도입했다. 그런 까닭에 그의 경우 현상학이라 하더라도 내세계적 수준에서의 일상세계에 대한 기술적 분석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경험과학의 기초는 초월론적 현상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존재도 자명한 것으로 여겨 이것과 교제하는 자연적 태도의 체험세계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슈츠의 경우에는 주체에 의한 의미 구성에 역점이 두어짐으로써 그의 이론에는 자칫하면 주지주의 또는 “사회적 세계의 자아 중심적 구성”(B. 발덴펠스)이라는 경향이 따라붙고 있었지만, 이러한 약점을 뒤르켐의 사회이론과 겔렌 류의 제도론으로 보완하는 동시에 이것들 전체를 헤겔과 맑스에서 유래하는 변증법적 사고 하에 통합함으로써 현상학적 방법을 “상식적 사고의 지식사회학”으로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 P. 버거와 Th. 루크만이다[『실재의 사회적 구성』]. 여기서는 사회가 객관적 현실로서 존재함과 동시에 주관적 현실로서도 존재한다는 입장에서 사회가 지니는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위해 외재화, 객체화, 내재화라는 세 가지 계기로 이루어지는 사회와 인간의 상호매개적인 변증법적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새로운 현상학적 사회학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흐름은 민속방법론(ethnomethodology)이다. 1960년대의 미국에서 H. 가핑켈에 의해 방법적으로 근거지어진 이 사회학은 슈츠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과학 이전의 생활세계에 초점을 설정하고, 사람들이 이 세계를 의미 있는 것으로서 구성해 가는 그 방법을 내적 이해를 통해 해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슈츠의 이론이 결국 의미 체험에서의 의식의 지향적 활동에 대한 분석에 머물렀던 데 반해, 민속방법론은 의미 구성과 행위 실현의 실천적 방법과의 결합에 관심을 가지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