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오늘날 사람들이 콘텍스트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한 순간에 무식해지곤 한다.
9. “생의 현실성에 속박되고 규정된 인간은 예술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것의 이해를 통해서 해방된다.”(딜타이, <역사적 이성 비판 초고>)
10. 하르트만에 의하면 객관적 정신은 “정신 세계가 심리생활(Seelenleben) 상부에 형성하는 특수한 존재 영역”이다.
12. 출발점이 다른데, 사상만 떼어와서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떤 텍스트를 보든 그 텍스트가 인간 존재의 어떤 층위에서 출발하는지를 말이다.
13. “사람의 삶은 고되다. 고됨은 여가를 용납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보자. “All of life can be divided into work and leisure, war and peace, and something done have moral worth, while others are merely necessary and useful.”(1333 a30 - 33)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의 인생을 일askolia과 여가skole로 나누었다. skole에서 school, schola, schule, ecole이 나왔다.
14. “It’s good for you.” 이 문장에서 good이란 단어는 매우 미묘하다.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moral thing과 necessary and useful이 동일해진다.
15. 칸트의 도덕률 성립 근거는 인간 자체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는 객관적 현실 없이 논의가 불가능하다.
16.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은 인생동안 여러분은 문학의 수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형태의 검열에도 홀연히 맞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오클라호마 침례파 여신도 단체에서 어떤 책이나 연극에서 사악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항의해 온다면, 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이라고 알려져 왔던 몇몇 작품들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행위에 기초해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은 심정입니다. … 이 계보도의 인물들에 의지하였던 위대한 작가들, 호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 그들은 우리들에게 길을 열어 준 작가들입니다.”
19. 그리스 철학은 ‘무로부터는 아무 것도 나올 수 없다(nihil ex nihilo)’는 것을 근본원리로 삼는다. 반드시 질료가 있어야 한다. 히브리 철학은 무에서 유를 만든다. 형이상학 자체가 다르니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융합될 수 없다.
20-21. 플라톤에 따르면 철학은 지적으로 가장 탁월하게 대상을 취급하는 능력이다. (중략) 플라톤에 따르면, 지적으로 탁월해지려면 감각에서 떠나야 한다. 신체soma에서 벗어나 고양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비가시적인 것으로 간다. 이 과정을 추상화abstrahieren라고 한다.
20. 호이징가는 중세를 히스테리의 시대라 했다. 육체적 생활의 시대면서 동시에 신에 대한 고도의 사변적 논의가 전개된 시대여서 그랬을 것이다.
23. 만일 어떤 강의를 듣고 ‘이게 맞는 것 같아’ 하는 정도에서 끝내버리면 더 이상 진전이 없다. 그건 강의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소룡 영화 보고 교실에서 고양이 울음 소리 흉내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직접 강의 내용을 써봐야 한다. 본인이 이해한 방식으로 강의를 재구성하여 선생에게 확인을 받지 않으면 강의를 들은 보람이 없다. 강의를 들었다면 관련된 책을 사서 읽고 스스로 써봐야 한다.
24-26. 인식 주관이건 인식 대상이건 모든 것을 고려해서 파악해 들어가야 한다. 이를 한 마디로 말하면 ‘방법론적 전체주의’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서문에 있는 내용을 살펴보자. “진리는 전체이다. 그러나 전체는 자신의 전개를 통해서 완성된 본질일 뿐이다. 절대적인 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성과라는 것, 그것은 종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리에 있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여기에 바로 절대적인 것의 본성은 현실적인 것, 주체 또는 자기형성이라는 것이 성립한다.” (중략) “이 사람의 일생은 이러이러했다”는 식으로 묘비명epitah을 쓴다. 이는 그 사람이 태어나 죽기까지의 일생을 한 마디로 요약한 것이다. 그것은 그의 生 전체를 압축한 것으로 그 사람의 진리치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생성된 진리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은 방법론적 전체주의다. 어느 한 순간의 단면만을 진리로 보는 게 아니라 그 과정 전체를 살펴보는 것이 진리이다. 어떤 대상이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 전체를 헤겔은 변증법Dialektik으로 보았다. 사람을 변증법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것을 우리는 총체성Totalität이라고 부른다. 총체성은 단순한 전체Allheit와 다르다. 총체성은 모든 것을 보는 것이다. 이 총체성을 학문의 목적이자 방법으로 삼은 사람 중의 하나가 게오르그 루카치이다.
25-26. 서양철학의 궁극적 실재, 절대적 진리가 어떤 모습을 갖느냐에 따라 Sein의 철학이 있고 Werden의 철학이 있다. (중략) 어떤 대상이든 층위가 있는데 그 층위를 따져가면서 봐야 한다. 이는 비단 학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What are you?”, “Who are you?”를 물을 수 있다. What은 본질이므로 나나 너에게 물을 때 대답이 같을 수 있다. 그러나 Who는 호칭으로서 다를 수 있다. 즉 자신의 층위가 엄연히 존재한다. 이와 동시에 층위에 대한 分도 존재한다. “君君臣臣父父子子”에서 君은 君의 分을 갖는다. 즉, 군자다움이다.
28. 브루노 스넬의 <정신의 발견>은 반드시 사서 읽어야 할 2차 텍스트이다. “초기 그리스의 조형예술에서 인간 묘사 역시 인간의 실체적인 신체가 통일체로서가 아니라 집합체로서 파악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기원전 5세기 고전기의 예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각 부분이 서로에게 관련을 맺고 있는 유기적이며 통일적인 신체로 묘사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호메로스적인 인간들은 후대의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체를 ‘신체 자체’로서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四肢의 총체로서 알고 있었던 데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호메로스는 거듭해서 민첩한 다리, 약동하는 무릎, 아주 건강한 팔을 몇 번이고 말하고 있는데 …”
29.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몸과 팔, 발을 따로 그렸다. 즉 이들에게는 유기적 전체로서의 신체 개념이 없었다. 여기서 ‘몸’은 몸 전체가 아니라 토르소만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그 중에서도 피부만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의 그리스 언어에 근거해서 호메로스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호메로스를 그 자체로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
29. “이도메네우스가 그(알카투스)의 몸을 다년간 지켜주던 …” 여기서 호메로스는 ‘몸’을 그리스어 chrós로 썼는데 이는 ‘피부’를 뜻한다.
30-31. “사물들은 그들의 출생 연원인 그 사물들에게로, 정해진 바에 따라 소멸한다. 그들은 서로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며, 그들의 불의에 대해 시간의 섭리에 따라 벌금을 문다.” (중략)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세계를 보는 태도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물활론物活論으로 물질이 그것 자체로 활동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물질 그 자체가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적인 원리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말을 이해하려면 moira, “정해진 바”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 moira와 가장 비슷한 영어 단어는 element이다. element는 기초, 요소, 원소, 원리, 영역 등 여러 뜻이 있다. moira와 가장 같은 뜻이 ‘영역’이다. moira, 즉 정해진 바를 넘어서 다른 영역으로 가면 아낙시만드로스가 보기에 이는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다. 갈가메시 서사시에서 영원한 생명은 사람의 moira가 아니다. 사람이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면 복수의 여신Nemesis이 나타난다. moira를 어긋내는 것이 불의이다. 당연히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32-33. 분배는 그리스어로 nemein 즉, 나누어주다는 뜻이다. nemein과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 nemesis이다. moira가 nemein 차원에 오면 정의Justice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에서 정의의 첫 번째 뜻은 다름 아닌 ‘제대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리스는 왜 그리 제대로 나누는 것에 신경을 썼나? 그리스인들은 배타고 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이다. 약탈경제를 일삼던 자들로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뭔가 얻으면 그때그때 처와 자식에게 줘야 한다. 농사야 1년 되면 수확하지만 이들은 자기 것이 언제 생길지 모르는 상태다. 왜 서양인들이 그리 분배에 집착하는지, 뭔가를 얻을 때 조차 각자 그릇을 들고 덜어서 먹는지 이들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합리성, 합리주의에서 ratio는 라틴어로 ‘계산하다’이다.
33. 아테네 시민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moira를 생각하고 이에 따라 살면 운명에 따라 살고 동시에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 moira라는 ‘정해진 바’가 nomos로 바뀜에 따라 공동체, 사회철학적 의미로 변모하게 된다. 이것이 콘포드의 <종교에서 철학으로>에 나와 있다.
35. arete와 agathos라는 말은 애초에는 아직 유용성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적어도 초기에는 전혀 도덕적인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 … 호메로스가 어떤 한 인간을 ‘agathos’하다고 말할 때, 그는 인간이 도덕상으로 비난할만한 여지가 없다든가, 혹은 마음이 선량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훌륭한 군인과 우수한 도구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처럼 유용하고 소용있고, 수완(능력) 있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arete라는 말도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품위, 공적, 성공, 신망 등을 의미한다. “arete를 위해서 행하게 되는 경쟁의 보수는 고전시대에 이르기까지 명성과 명예였다. 공동체는 개인에게 부과되고 있는 가치를 보증한다. 따라서 명예(time)는 도덕의식의 발달에서 arete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브루노 스넬, <정신의 발견>)
36-37.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그리스 문명의 탄생>에 보면 영웅의 정의가 나와 있다. “영웅이란 낱말은 크레타어에서 온 것인데 … 영웅이란 자손이 정성껏 바치는 재산을 받아 무덤 너머까지 그의 권능을 행사하여 사후에도 생전에 다스리던 공동체를 보호해주는 위대한 인물을 말한다.”
37. 피타고라스가 세 가지 종류의 삶, 즉 상인, 운동선수, 관객을 나눴다.
39-40. 그리스 비극은 철저한 자기 의식에서 나온다. 박홍규 선생의 <형이상학 강의2> “플라톤과 전쟁”은 반드시 참조해야 한다. 전쟁에 나선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끝까지 답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극이 나오는 것이다.
40. 고대 그리스 비극 경연대회는 나흘간 진행되었는데 모두 15편 정도였다. 혈연공동체는 신이, 시민결사체는 인간이 정한 것으로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서양인들은 후자를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로마가 가능했다. 노모스만 지킨다면 시민으로 인정하고 식민지인에게도 시민권을 준 것이다.
41. 로마와 중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문제사적으로 중요치 않다. 철학사가 없다. 철학자가 없는 시대는 행복한 시대다.
44. 우리는 당위Sollen와 현실Sein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어떻게 존재를 당위에 맞출 것인가. 칸트는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와 인간의 인식이 가능한 세계인 현상의 세계, 이 두 세계를 완전히 나누어 버렸다. 이는 흄으로 인해 독단의 잠에서 깨어난 칸트의 성과였다. 이렇게 해서 나온 칸트의 저작이 <순수이성비판>이다. 칸트는 결코 두 세계를 매개하려 하지 않는다. 신 역시 요청할 뿐 매개하려 들지 않는다.
45-46. 서양철학의 주류는, 늘 강조하지만,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흄, 칸트, 비트겐슈타인 등이다. 즉 모두스 뽀넨스modus ponens에 충실한 이들이다. 이를테면 케니가 공저자로 참여한 <서양철학사>는 서양철학의 주류를 강조하고 힐쉬베르거의 책은 오히려 주류를 경시한다.
46. 경계를 지원버리는 야바위꾼들이 있다. 신이치도 지적했듯이 헤겔은 매개를 살리는, 혹은 경계를 지우는 철학자이다. 뚜렷한 경계를 세운 칸트와 다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물자체와 현상계가 다르다고 말한다. <실천이성비판>은 <순수이성비판>에서 모른다고 했던 물자체를 요청한다. 제3의 저서 <판단력비판>에서 양자를 매개하지 못한 것이 하르트만이 전하는 칸트의 한계였고, 이 미해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 칸트의 뒤를 이은 독일 관념론자들의 문제였다. 헤겔 정신현상학은 감각적 확실성에서 출발하여 절대적 지에 이른다. 칸트식으로 말해보면 감각적 확실성은 현상이고 절대적 지는 물자체이다. 핀들레이는 “헤겔의 철학은 그 체계 안에서 보면 모두 진리이다.” 물론 그 체계를 벗어나면 모두 거짓으로 보인다고 돗붙인다. 헤겔은 <논리학>, <엔치클로페디> 등에서 매개를 통해 모든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헤겔은 낭만주의자다.
47. 움베르토 에코의 <해석의 한계>를 보자. 헤르메스주의는 2세기경 헬레니즘 세계를 뒤엎었던 사상으로 로마의 모두스 뽀넨스에 대비된다. 모두스 뽀넨스로서의 로마 對 헤르메르로서의 헬레니즘 세계라는 구조가 여기서 나온다.
48. 모두스 뽀넨스에는 시간적 선후가 있고 합리적 분별이 있다. 이것이 없다면 논리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이들은 동일률과 모순율에 입각하여 사유한다. 반면에 헤르메스주의는 시간과 역사를 향하여 거부의 신드롬을 궁리한다. 원인에서 결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를 독일 낭만주의라는 토대 위에서 정립한 자가 바로 헤겔이다.
48. 마르크스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학의 목적으로 삼는다. 이것으로써 ‘과학적’이라는 방법과 ‘사회주의’라는 목적으로 자신의 학문적 아이덴티티를 규정한 것이다. 푸르동과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의 차이점은 ‘사회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법론에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푸르동이 목표는 같지만 조야하다(crude)고 평한다.
49. 마르크스는 헤겔의 방법론적 전체주의를 수용했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은 거꾸로 서 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헤겔의 철학이 신비주의적이라는 뜻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헤겔의 변증법은 원인과 결과가 구별되지 않는다. 헤르메스적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방법론적 전체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신비주의적 요소를 배제하여 역사적 방법(발생적-구조적)을 제시하였다. 헤겔은 방법론적 전체주의에서 시간을 일직선으로 놓지 않고 원으로 만들어 버렸으나 마르크스는 원을 직선으로 펴낸 것이다. 원인과 결과가 전도되어 있다는 신비주의를 배제하고 방법론적 전체주의를 수용한 것이 마르크스의 학적 방법론이다. 분명히 경계 세우기를 하는 모두스의 입장에 선 것이다.
50. 월쉬의 <역사철학>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사회과학자들을 위한 학문적 지침을 만든 것이다. 경계 지우기를 사용하면서 마르크스로 돌아가면 프루동처럼 조야한 사회주의자가 된다.
51-52. 다빈치는 방식Manner과 양식Stil을 구별해서 썼다. 전자는 우연적 개인적 성향이요, 후자는 새로운 예술적 형식과 방법론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래서 천재는 사태의 본질에 관여하여 이를 개념적으로 파악해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구현한다. Stil 안에는 지적 파악을 구현하는 방법까지 들어간다. 르네상스적 천재는 Stil을 만들어낸 이들이요, 낭만주의적 천재는 그저 Manner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52-53.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설명을 비교해보자. 먼저 책과 세계. “그가 살아간 시대는 중세의 풍요가 넘치고 그리스의 철학이 유럽으로 들어와 활발하게 연구된 다음이었다. 그러므로 중세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당시에 재발견된 플라톤철학, 아리스토텔레스철학, 헬레니즘, 아랍철학 및 이교사상 등을 기독교 중심으로 종합하고 재정리할 절실한 필요가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은 바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해낸 결과물인 것이다. 그의 사상은 어설픈 절충이 아니라, 기존의 모든 것을 분석하고 소화해낸 새로운 종합이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태도를 바탕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수용하되, 둘을 체계적으로 조화시킨 것이다.” 다음은 진중권의 <미학 오딧세이> 1권에 있는 내용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살았다. 이미 중세적 사고방식은 해체되고 있었고, 교회는 점차 발전하는 자연과학과 상대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이 싸움을 피할 수 있을까? 토마스의 해결책은 ‘이성’과 ‘계시’를 아예 분리하여,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양자를 교차하지 않는 두 개의 동그라미로 나누어 버리는 거다.” 진중권의 언급은 문헌적 팩트에 근거한 말이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문턱에 살았다”는 거짓말이다. 그는 중세의 절정에 살았다. “이미 중세적 사고방식은 해체되고” 있지 않았다. 자연과학도 없었다. 당시 교회의 적은 이단운동이었다.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 도미니크 수도회가 설립되었고 여기서 학자, 이단심판관이 다수 배출되었다. “토마스의 해결책은 이성과 계시를 아예 분리”한 것이 아니라 양자를 종합하는 것이었다. 학적으로 그는 결코 양자를 분리하지 않았다. 진중권의 이런 구절들은 정확한 사실을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저 막연히 이해한 대로 쓴 것일 뿐이다. 어쨌든 이는 지적 사이이며 한국 지식인 태반이 저지르는 작태이다.
54. 근대 자본주의는 로마시대, 마키아벨리의 세속성, 서구 저변에 놓인 약탈적 시스템, 다윈의 진화론, 홉스의 국가론, 데카르트 및 뉴턴의 기계론 등이 결합된 것으로 여간 단단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강력한 체제가 없었다. 욕망에 호소하여 흡인력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