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rch 25th, 2017

March 25, 2017: 6:22 pm: bluemosesErudition

제임스 힐만은 마흔 아홉에 “계곡과 골짜기”를 발표하였다.

: 5:50 pm: bluemosesErudition

암중비약. 어둠 속에서 날고 뛴다.

: 3:18 pm: bluemosesErudition

1분파(동지), 2분파(적), 3분파(중도). 의사 표명 시, 중도의 얼마가 호감을 갖느냐, 가 관건이다. 중도는 어떻게 친구가 되는가. 래포 없이 바른 말을 하면 부지중에 괘씸죄를 범하고 만다. 청자의 입장에선 각성을 촉구하는 ‘발언’이 무턱대고 훈계하는 ‘공격’으로 인식된다. 친밀의 결여가 패착의 뿌리인 셈이다. 반감은 논조의 다름이 아니라 자긍의 손상에서 온다. 그 날, 본의 아니게, 싸가지 없는 진보였다. 진심도, 예열을 요한다.

: 12:45 pm: bluemosesErudition

알렉사에게, “물음은 신성하다”(하이데거)

: 12:06 pm: bluemosesErudition

TvN <어쩌다 어른> 역사(설민석), 심리(김경일+허태균)에 이어 미래 _ 최진기 “함께 인문학”

: 11:35 am: bluemosesErudition

냉장고. 왜. 24시간 가동되기에.

: 11:33 am: bluemosesErudition

NEST Labs, 2010. 5. ~ 2014. 1., Google $3,200,000,000

: 2:42 am: bluemosesErudition

교과/비교과 프레임은 학업에 대한 몰이해다.

: 2:12 am: bluemosesErudition

차라리 후회를 택할 걸 그랬나. ‘미움받을 용기’를 그리 감명 깊게 읽은 것도 아닌데. (…) 앞의 글을 남긴 다음 날이다. 고린도후서 7장을 묵상했다. 거짓 죄책감으로 ‘각성의 호소’를 사과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이도저도 안 된다. 필패의 싸움을 직감하였다. 위신의 손상이 예견되었다. 그러나 자멸의 침륜에 동조할 수는 없었다. 후회의 기만을 뒤로 하고 별을 향해, 다시 별을 향해.

“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것은 없습니다.”

: 2:00 am: bluemosesErudition

기계의 생각과 인간의 사유는 어떻게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