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010

May 25, 2010: 2:07 pm: bluemosesErudition

1. “행복의 중요한 요건은 바로 자기 안에서 완결되는 것, 즉 자족성과 완결성”이다(강유원, 2010: 161). 행복(eudaimonia)을 추구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목적적 활동(Praxis)으로 이루어진 실천적 삶을 역설한다.

2. 비현실적 현실주의를 지양하는 초현실적 사상은 한결같이 필요를 지양하는 영혼의 전환을 요청한다. 어떻게 각성을 넘어 체화할 수 있는가?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필요를 지양하는 영혼의 전환]은 요란한 자기의지를 부인하는 의지의 항복을 통해 가능하다.’

3. “사람들은 언제나 영적 비밀을 깨달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간다. 영적 비밀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생명이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오랜 종교로서) 언제나 십자가 상에서 자기를 못박음으로 시작한다.” _ Robert Murray M’Cheyne(1813~1843)

4.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서 외적인 모든 것들, 곧 당신의 건강과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 및 모든 필수적인 것들을 다 사라지게 하실 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이 주님만으로 풍성해지고 주님을 향하여 성장하는 것입니다.” _ Oswald Chambers(1874~1917)

5.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_ 빌립보서 4:11~13
: 3:54 am: bluemosesErudition

1)Paulo Freire는 도덕의식을 역설했고, 2)Eva Illouz가 도덕감정을 탐구하며, 3)B. F. Skinner는 도덕행위를 연구했다. 1)은 수술 중 각성에 직면하였고, 2)는 자기계발적 치유로 귀결되었고, 3)은 몰인격적 처우라 비판받았다. 1)과 2)와 달리 3)은 무반성적으로 암기한 사항이거니와, 행동주의를 폄훼한 인본주의 심리학은 자아실현을 내세워 냉혈한 세계를 조성해왔다.

* 자아실현에 반대한다. 그것은 요란한 자기의지의 추구를 타인의 고통 위에 구축하기에.

: 3:10 am: bluemosesErudition

1. “우리 전공”이란 편협한 어구에, 그가 “평생교육”에 선의를 갖되 해악을 끼칠 자일 것이라 감지했다. 세부전공에 인이 박힌 평생교육 옹호자? ‘협소한 포용’은 표리부동이다. 더욱이 소소한 미담 사례로 학점은행제의 전반적 경향을 호도하는 그가 운운하던 “하나님의 손길”은 [비겁하고 치졸한] 우물에 독 넣기였다. 1)모순, 2)일반화, 3)원천봉쇄 _ 참담한 대담이었다.

2. 학력사회를 탈피하고 학습사회를 구현한다며 [학점’은행’제, 교육’계좌’제 등의] 학습인증제를 시행하는 평생교육진흥원은 1)학력사회 패러다임에 근간한 은행저금식 교육을 추구하고, 2)모든 학습의 통제 및 관리를 지향함으로써 ‘전 사회의 학교화’를 구축하고 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연락이 왔다(2010. 9. 2).

May 24, 2010: 12:31 am: bluemosesErudition

1. 아이는 부모의 행위를 비판하고 혐오하나 체득한다. 도덕판단과 도덕감정이 도덕행위를 결정짓지 못한다. 관건은 몸의 학습이다. 윤리적 습관을 체화시키는.

2.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1103b 1~3)

3.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품성상태(hexis)들은 [그 품성상태들과] 유사한 활동들로부터 생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우리의 활동들이 어떤 성질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 활동들의 차이에 따라 품성상태들의 차이가 귀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죽 이렇게 습관을 들였는지, 혹은 저렇게 습관을 들였는지는 결코 사소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큰 차이, 아니 모든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1103b 22~25)

4. “어렸을 때부터 죽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고, 마땅히 괴로워해야 할 것에 고통을 느끼도록 어떤 방식으로 길러졌어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교육이다.”(1104b 12~14)

5.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New York Review of Books’에 기고한 ‘The Case Against B. F. Skinner’라는 글을 통해 행동주의 심리학과 스키너를 전체주의 사상의 지지자들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자유와 존엄을 누리는 인간 내면의 자율적인 존재가 인간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긍정적 및 부정적 강화요인을 통해 인간행동을 다듬어나간다. …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도 인간의 성격보다는 인간의 행동을 개선하는 데 있다.” B. F. Skinner의 행동주의 심리학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자유와 존엄을 넘어서(Beyond Freedom and Dignity)>, <월든 투(Walden Two)>를 살펴보자.

May 23, 2010: 5:55 am: bluemosesErudition

르네상스는 중세와 근대의 접점이다. 다음을 참고하자. <중세의 가을> 혹은 그것에 관한 문학 <장미의 이름>, <르네상스의 마지막 나날들>.

: 5:21 am: bluemosesErudition

대조성경을 보다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의 결정적 차이를 발견하였다. 그것은 ‘존대법’이다. 예컨대 사도행전 16장 31절을 보면,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4:34 am: bluemosesErudition

합신 박윤선 목사님을 따라 구약은 신약으로, 신약은 구약으로 이해한다. 양자가 ‘철커덕’ 연결되는 접점은 사랑 즉, 은혜의 공의이다.  

* 1)<사도행전> 요약정리와 2)이애실(2003)의 <어? 성경이 읽어지네!> 발췌독 병행할 것.

: 12:55 am: bluemosesErudition

“extraordinary gift for hope, a romantic readiness, capacity for wonder”

May 22, 2010: 7:11 pm: bluemosesErudition

1-1. “The spec for something, especially a machine or vehicle, is its design and the features included in it.”

1-2. “Someone put You on a slave block And the unreal bought You.”(Hafiz)

1-3. “A new world, material without being real, where poor ghosts, breathing dreams like air, drifted fortuitously about…”

1-4. “Material is unreal. The real is not realistic. We all live in an ‘unreal city’ of T.S. Eliot.”

 

2-1. “일반인과 대학생이 섞인 강의를 해보면 대학생들의 수업태도가 압도적으로 불량하며, 숙제를 상대적으로 부실하게 하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이 공부가 먹고 사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일반인들은 공부가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일테고.”(gaudium)

2-2. 스펙과 무관한 공부는 “먹고 사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부가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현실주의자는 [물질만능주의적이지] 현실적이지 않다. 영혼을 배제한 물질의 세상은 지극히 현실적인 가상공간이다. Matrix가 시사하는 바도 이것이었다.

2-3. “나는 학생들에게 꿈이 없는 세상, ‘material but not real’한 세상의 비참함에 대해 역설한다. 단지 육체적으로 경험하는 세상, 오감으로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지만 영혼과 마음으로 느낄 수 없는, real하지 않은 세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슬픈 세상인지.”(장영희, 2010: 167)

: 6:43 pm: bluemosesErudition

“사람들은 나에게 실현할 수 있는 일을 제안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지금 행하고 있는 일을 실현하도록 제안하든가, 아니면 적어도 현존하는 악과 결합된 선을 제안하라는 것과 같은 뜻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말은 어떤 경우의 문제에 있어서는 나의 계획들보다 한층 더 비현실적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결합 속에서는 선은 항상 뒤쳐지고 악이 앞서기 때문이다. 선한 방법을 어중간히 취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미 실행되어 오는 방법에 전적으로 따르면 사람들도 그만큼 모순이 적게 될 것이다. 인간이란 상반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성취할 수는 없는 법이다.”(Rousseau, 1762[1994]: 5)

“따라서 당연히 ‘그런 시도는 승산 없는 무의미한 저항이 아닌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것이다. 그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자. 그런 질문 형식 자체가 이미 ‘기계화’, ‘야만화’ 된 것이라고 말이다. 인간은 승산이 있을 때만 저항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승산 없는 저항은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저항이 목적이고 이 저항을 통해 스스로를 인간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그 저항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리고 종국엔 그러한 저항을 거쳐야만 진정한 승산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저항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애당초 승산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서경식, 2005[2007]: 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