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한단에 2,000원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업체 소속 기사의 추락사 이후 에어컨 수리 기사들은 스스로를 ‘계란’이라고 부른다. 이 회사는 수리 기사들에게 월급이나 주급이 아니라 건당 수수료를 지급하는데, 이동 시간과 상담 시간을 모두 빼고, 수리하는 데 걸린 시간만 분 단위로 계산하여 ‘분급’을 지급한다. 말이 참 슬프다.”
이즈음 시를 읽거나 쓸 때, 시란 행복 없이 사는 일의 훈련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중략) 문제는 주어진 磁場 속에서 주어진 磁性을 띠고 안주하려는 정신과 대결하려는 자세에 있을 것이다. 그 자세가 개성을 낳고, 개성이 진부함이 아닌 신선함을 만들어 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자세를 존중하는 정신이 바로 예술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李晟馥의 시를 읽고 당황한 사람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지난 십여 년간 우리가 길들여져 있는 몇 가지 유형의 시 어느 것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그는 金洙暎과 비슷하면서도 金洙暎에게서 볼 수 있는 思辨的인 요소를 극도로 줄이고 있다. 그보다는 자유로운 聯想과 그 연상을 따르는 意識이 그의 主調를 이룬다. 그 연상은 그러나 심리적으로 긴밀한 연결의 고리를 가지고 있는 연상이다.
_ 황동규, “幸福 없이 사는 훈련 - 李晟馥의 시세계”
내가 떠나기 전에 길은 제 길을 밟고
사라져 버리고, 길은 마른 오징어처럼
퍼져 있고 돌이켜 술을 마시면
먼저 취해 길바닥에 드러눕는 愛人,
나는 퀭한 地下道에서 뜬눈을 새우다가
헛소리하며 찾아오는 東方博士들을
죽일까봐 겁이 난다
_ 이성복, “出埃及”,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지성사,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