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11th, 2017

December 11, 2017: 10:33 pm: bluemosesErudition

대학교 2학년 때 영국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사회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 영향으로 이과를 지원해 화학이나 생물학 같은 기초 과목에 흥미를 못 느꼈다. 학점이 엉망이고, 전공인 식품공학에도 재미를 붙이지 못할 때였다. 영국 여행 후 독일로 갔는데 베를린 지하철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베를린에 있는 코트라 공관장이었다. 그 분 집에 초대받아 식사까지 대접받았는데 “식품 공학은 정말로 중요한 학문이다. 유럽에서 식품 산업은 대표적 고부가가치 분야다.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란 말씀이 인상 깊었다. 그후부터 식품과 농업이 달리 보였다.

_ 서울대 식품·동물생명공학부 식품생명공학전공 이기원

: 10:05 pm: bluemosesErudition

루만의 다차원적 체계이론과 현대 사회 진단에 관한 연구(정성훈)

: 5:39 pm: bluemosesErudition

18. 경제학자 우석훈은 우리 사회의 이런 슬픈 자화상을 ‘내릴 수 없는 배’로 은유하였다. 그는 이 병적으로 비정상적인 사회를 진단하기 위해서 ‘재난 자본주의’라는 개념어를 발명하였다. 재난 자본주의란 “사람들이 엄청난 재앙에 놀라고 당황할 때, 그 사회 기득권 집단이 자신들이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강력히 전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재난 자본주의’에 침수된 한국 사회는 유령선의 몰골이다. 우석훈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나라의 경제와 정치가 만난 가장 슬픈 사건”에서 우리는 회개와 성찰,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슬픔조차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려는 비뚤어진 욕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1. 우리 교육의 근간을 규율하는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 이념)는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중략)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은 1945년, 미군정의 자문기구였던 조선교육심의회 교육이념분과위원회에서 우리 교육 이념으로 처음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홍익인간 이념은 대한민국 건국 후 1949년 제정 공포된 <교육법> 제1조에 공식적인 교육의 기본 이념으로 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홍익인간은 영어로 “Maximum service to humanity”로 번역된다. 학자에 따라서 “The greatest service to the benefit of Humanity”로 번역되기도 한다.

29~30. 우리의 이 모든 소비 행위는 기업의 계획적 진부화 전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계획적 진부화란 기업에서 신상품의 판매 촉진을 위해서 기존 상품을 계획적으로 진부화시키는 행동을 뜻한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가 계획적 진부화 전략을 통해서 자동차 산업의 선두 주자인 포드를 파산에 이를 정도의 궁지로 내몰고 최대 자동차 회사로 부상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일화이다. 제너럴 모터스의 계획적 진부화 전략은 오늘날 모든 자동차 회사의 일반적 생산 전략이 되었다. 세르주 라투슈는 <낭비 사회를 넘어서>에서 제조사가 제품 생산 단계에서 이미 사용 연한을 설정하고 그 안에 제품이 고장 나도록 기술적인 조치까지 한다고 폭로하고 있다. 1881년 에디슨 전구의 수명은 1,500시간, 1920년대 공장 제품은 2,500시간이었다. 그러나 1924년 제너럴 일렉트릭을 비롯한 전구 업체들은 전구 수명을 1,000시간 이하로 하기로 담합했다. 품질 좋은 동독제는 수입되지 못했고 수명이 긴 전구 제작과 관련된 특허는 모두 매장되었다. 프린터에는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칩이 삽입되어 있다. 수리가 안 되는 아이폰 배터리는 수명이 18개월로 제한되어 있다.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휴대전화 자체를 바꾸어야 하는 셈이다.

30.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에서 집단 백혈병이 발병했을 때 소비자들이 삼성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면 어떠했을까?

31. 울리히 벡은 1986년 <위험사회>를 통해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궁핍은 계급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유명한 경구를 남김으로써 현대사회의 위험의 본질을 명료하게 부각시켰다. 그의 경구를 증명하는 사건이 공교롭게도 책이 출간된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로 실제로 일어났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핵발전소 제4호기가 폭발하여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100배 이상의 방사능이 유출되었다.

36. 바우만은 “‘포드주의적 공장’은 (……) 자본과 노동 간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식의 일종의 결혼 서약이기도 하였다. 그 결혼은 사랑의 결합인 적은 거의 없이, 편리나 필요에 따른 결혼이었지만, (그것이 개인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었든지 간에) ‘영원토록’ 이어질 운명이었으며 거의 대부분 그렇게 지속되었다”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액체 근대의 시대에는 그런 안정적인 노사 간 영속적인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은 장소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익이 되는 곳이라면 지구상의 어느 곳이라도 순식간에 이동한다.

37~38. 엄기호의 ‘단속사회’라는 개념은 이런 현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어이다. 그는 엄마와 마주 앉아 있지만 엄마와는 대화도 나누지 않고 친구들과 카카오톡에만 열중하는 한 소년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고, ‘쉴 새 없이 저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하는’ 단속의 양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엄기호의 지적처럼 오늘날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은 ‘접속 차단’과 동시에 존재한다. 스마트폰의 모바일 메신저 등을 통해서 우린느 쉴 틈 없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지만 여기에는 접속 차단이라는 비밀 제동 장치가 담겨 잇다. 접속 차단 장치의 도움으로 우리는 나와 다른 낯선 것과의 만남, 진정한 타자와의 만남을 차단하며, 공적인 것과도 단절한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에도 불가피하게만 최소한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자기 검열 속에 숨는다. 이처럼 나와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지만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외면하는 사회를 엄기호는 ‘단속 사회’라고 부른다.

41~42. 공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를 좀 더 객관적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서 나는 강연이나 연수에서 교사들을 만날 때 가끔 미니 활동을 하곤 한다. 즉, 한국에서 ‘공부하는 모습’ 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 보거나 말로 표현해 보도록 과제는 낸다. 그러면 90퍼센트 이상은 동일한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그린다. (중략) 그렇다면 외국 사람들도 ‘공부’에 대해 이런 이미지를 떠올릴까? 동일한 이미지를 연상한다면 공부의 의미나 공부 방식이 보편적인 특성을 지님을 의미한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우리의 공부 문화와 그들의 공부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후자라면 ‘공부란 무엇이고 공부의 목적이 무엇이며 공부하는 방식은 문화마다 어떻게 다른가’ 하는 낯선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생겨난다.

47~48. 미국의 언론인 아만다 리플리는 2013년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중략) 이 책에는 미네소타의 미네통카 고등학교에서 부산의 남산고등학교에 교환학생 자격으로 온 에릭의 이야기가 나온다. 에릭은 학교 수업이 밤 9시가 되어야 끝나고, 그 이후에도 ‘학원’이라고 알려진 사립 교육 기관으로 향해 11시까지 수업을 듣는 한국 학생들을 보며 “어떻게 십 대 청소년들이 공부 외에 아무것도, 진짜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하며 놀라워한다. 에릭에게 한국은 수업 시간에 다들 잠을 자면서도 국제 시험에서는 높은 성적을 내는 신기한 나라이자, 똑같은 수업을 학교에서도 듣고, 또 학원에 가서도 들어야 하는 비효율의 극치인 나라이다. 아만다 리플리는 에릭의 목소리를 통해 사회적 성공을 명분으로 학생들을 엄청난 학습량과 살벌한 경쟁으로 내모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압력밥솥’이라고 은유하고 있다.

49~50. 정현모 피디는 유태인들이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3퍼센트를 휩쓸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세계 인구의 0.2퍼센트에 불과한 유태인들이 그렇게 높은 성취를 올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 후속 작업으로 기획된 것이 2013년에 방영된 <공부하는 인간, 호모 아카데미쿠스>이다. (중략) 문화마다 공부하는 모습이 다르다. 예컨대, 한국의 도서관에 가면 어디나 ‘정숙’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왜? 도서관은 나 홀로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시원이나 교실이나 독서실이나 도서관이나 우리는 정숙하기를 요구받는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공부는 혼자서 집중해서 무엇을 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유태인들의 공부하는 장소는 어디를 가도 시끄럽다. 유태인들에게 공부는 질문을 매개로 한 토론과 논쟁이기 때문이란다.

59. 해방 이후 15년밖에 지나지 않은 1960년에 연간 국민소득이 78달러에 지나지 않는 상황에서 선진국에 육박하는 교육비가 국가와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등록금을 납입해야 하는 학기 초에는 전체 통화량 가운데 20 내지 25퍼센트가 학교에 들어갔을 정도였기 때문에 ‘교육망국론’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76. 철학자 손봉호는 행복을 늘리는 것보다 고통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고통받는 인간>이란 책을 통해 “최소 수의 최소 고통”이라는 윤리적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더 긴급하다”라는 말로 고통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필수적이고 근본적이라고 주장한다.

79.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독립적인 인격으로 인정해야 한다. 성적이란느 단일한 기준으로 자녀를 타자와 평가하기를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가 타자의 고통에 둔감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훈육할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어떤가? 실천할 만한가? 이렇게 적고 보니 ‘나쁜 부모 되지 않기’가 ‘좋은 부모 되기’보다 더 어렵다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_ 이혁규, <한국의 교육 생태계>, 교육공동체 벗, 2015.

: 5:09 pm: bluemosesErudition

“예나 지금이나 재미만큼은 싸움 구경이 으뜸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지금도 레슬링의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김일의 박치기와 천규덕의 당수로 대변되는 그때 그 호쾌한 혈투를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권투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싸움 스포츠다. 4전5기의 신화 홍수환이 카라스키야를 쓰러뜨리던 날, 온 나라가 환호성으로 들썩였다.” “초기 재즈 피아니스트들에게 배틀은 거의 일상이었다. 쾌활하면서도 에로틱한 부기우기로 청중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은 패츠 월러를, 건반 위의 괴물이라고 불리는 아트 테이텀이 나타나 불을 뿜어내는 듯이 강렬한 연주로 제압했을 때 청중은 광분했다.”(민은기)

: 5:04 pm: bluemosesErudition

“수학 30번 한 문제를 푸는 데 100분 중 60분을 매달렸다. 답이 이상했다. 222였다. 웃음이 나왔다.” 재작년 수능 만점자 김학성군의 얘기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다니는 그를 인터뷰했을 때 “힘들 땐 그냥 놀았고 공부는 즐겼다”고 했다. 지난해 수능 만점자 이영래(서울대 경제1)군도 신선했다. “독서를 멀리했으면 만점이 어려웠을 거다. 고교 3년간 150권을 읽었다. 걸그룹 I.O.I의 멤버 전소미 무대를 보면서 긴장을 풀었다.”

: 5:01 pm: bluemosesErudition

“1980~1990년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역대 의장을 배출한 대학 11곳(고려대, 명지대, 부산대, 서울대, 연세대, 영남대, 전남대, 조선대, 한국외대, 한양대, 홍익대)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 대학이 현재 총학 구성에 실패하거나 애로를 겪었다. 한국외대는 2년 연속 입후보자가 없어 지난달 총학 선거가 무산됐다.”

: 12:19 am: bluemosesErudition

0. 1987년부터 교단에 섰다. 10년 동안 중ㆍ고등학교에서 가르쳤으며 1997년부터 청주교육대학교에서 사회과교육, 다문화교육, 현장연구방법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교실수업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이래 수없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수업 실천을 개선하는 데 지속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수업 비평이라는 새로운 연구 장르를 개척했다. 세계의 수업을 관찰하여 일상의 수업 실천이 한 나라의 문화를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비교 연구하는 수업 비평서를 오래전부터 구상하고 있으나 아직 숙제로 남겨 두고 있다.

7. 돌아보니 나는 주로 수업 현상을 중심으로 우리 교육 현장을 연구해 왔다. 교실수업이 공교육의 최전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전선에서 교사와 학생이 행복하게 만나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교사와 학생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그 일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연구를 했던 것 같다.

9~10. 우리 삶은 왜 점점 더 팍팍해져 갈까? 왜 노력은 하는데 전망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갈까?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내놓는 것은 내 학문적 능력의 범위 밖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배경을 지닌 교육학자로서 나는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이룩한 눈부신 성취가 오늘날 우리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흔히 학자들은 ‘성공의 위기’라는 말로 표현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루어 낸 성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시대와 상황이 어마어마하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행동 방식으로부터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공히 적용된다. 보수는 박정희식 성장 모델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진보는 전투적 민주화운동이 가져온 성공의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에 대한 집착이 달라진 시대에 대한 유연한 적응과 변화를 어렵게 만든다. 성장 지상주의 이후의 새로운 경제 질서나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기획이 지극히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11. 우리 교육 현장의 일상적 실천은 이미 조종을 울리고 있는 석양의 풍경에 병적으로 고착되어 있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생각 행위 방식을 요구한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교육 행태, 정치 행태, 경제 행태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이런 현실은 다시 우리에게 교육에 주목하도록 만든다. 교육은 경험의 끊임없는 성장과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동력이기 때문이다. 좋은 교육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구성원들을 해방시킨다. 좋은 교육은 낡은 습속을 낯선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미래를 진취적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해준다. 혹자는 우리 교육의 많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사회 구조의 개혁 없이는 교육의 변화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일정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옳은 말은 아니다. 교육은 스스로 사회를 개혁하고 혁신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교육이 지닌 이런 힘을 올바로 인지하였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전혀 없었던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선각자들은 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여명을 기약하지 않았던가?

12~13. 영국 출신의 기자 다니엘 튜더는 2012년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로 되어 있다. 독자들은 제목만으로 이 책이 말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간파할 것이다. 과거의 성공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삶은 더욱 피폐해져 가고 있다.

330~331. 문제가 진부해졌다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나 힘을 충분히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것은 기득권의 저항 때문일 수도 있고, 개혁 논자들의 비현실적인 주장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구조화된 문제의 심각성이 개혁을 실현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경우일 수도 있다.

344~345. 이 책을 한참 집필하고 있던 2014년 10월경부터 나는 원인 모를 통증으로 고생을 시작했다. 인생 오십 줄을 넘어 처음으로 경험한 몸의 이상으로 나는 적잖이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당했다. 병의 원인을 찾는 데만 6개월 이상이 걸렸고 최종적으로 자율신경계의 시스템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 기간 약 먹고 스트레스 관리를 하면 낫는 병이다. 더 심각한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셈이다. 그러나 원인 모를 통증 속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엄청난 공포를 체험했다. 한 인간의 나약함을 절실히 체감케 하는 기간이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병으로 인한 고통은 삶의 기반을 흔드는 실존적 위기가 아닌가? 그래서 고통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배웠다. 동시에 한 개체의 삶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도움 속에서 유지되는가도 깊이 자각할 수 있었다. 감수성 있는 마음으로 보면 생존 자체가 감사로 가득 차 있는 우주 속을 유영하는 일이다.

345~346. 내가 학자로 성장하는 동안에 수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 인연을 어찌 여기에 다 표현하겠는가? 특히 학부 지도 교수님이셨던 손봉호 선생님과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이셨던 조영달 선생님께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다. 손봉호 선생님을 통해서 나는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학자가 어떤 책무를 감당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사회 참여와 더불어 평생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오신 선생님을 반쯤이라도 따라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조영달 선생님은 내가 박사과정 수료 후 길을 잃었을 때 교육 현장에 대한 내 문제의식을 학문적 글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 교육 현장에 대한 관심과 그것을 생생하게 연구하는 방법을 조영달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다. 더욱이 교직 생활 30년 가깝도록 변변한 제자 하나 키워 내지 못하는 나에게 조영달 선생님은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제자들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스승상을 끊임없이 보여 주신다.

347~348. 수업과 학교 혁신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가슴 뜨거운 현장의 많은 실천가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수업, 학교, 교육에 대한 영감을 제공해 주는 도반이자 스승들이다. 좋은교사모임의 정병오 선생님, 수업코칭연구소의 김태현 선생님, 협동학습연구회의 김현섭 선생님, 교컴의 함영기 선생님, 참여와소통모임의 이범희 선생님, 스쿨디자인21의 서길원 선생님, 성미산학교 박복선 선생님, 그리고 새로운 학부모 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송인수, 윤지희 선생님은 한국 교육의 밝은 미래를 열어 가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직접적 연구 관심사인 수업 비평에 대한 지속적 연구와 실천을 하는 다온의 윤양수 선생님과 동료들, 경기도중등수업비평연구회의 윤갑희 교장 선생님과 회원들도 나의 연구와 실천과 관련하여 좋은 파트너십을 맺어 온 소중한 인연들이다. (중략) 아울러 최근 인연을 맺게 된 거꾸로교실과 관련하여 남다른 직관과 추진력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정찬필 피디님과 미래교실네트워크의 모든 선생님과도 깊은 우정을 계속 나누고 싶다.

_ 이혁규, <한국의 교육 생태계>, 교육공동체 벗, 2015.